http://www.seoprise.com 날짜 : 2005년7월12일 09시07분
'사관이란 무엇인가?"를 읽으셨군요. 관점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주는 다양한 사관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책이라 제게도 사유방식을 정립해 준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논문해설로 구성된 책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중 사관의 단위를 가장 커다랗게 확장시킨 토인비의 '문명사관'으로 대부분의 역사를 바라보면 확실한 척도로 역사를 규명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실증적 고고학이 뒷받침 하는 서양 역사학의 특성상 문명초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후대에 전해지지 못한 목기시대를 정립하지 못해 이빨빠진 것이 한계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가진 사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들은 그의 권위에 눌려 이성적 접근으로 보완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서양식 피라밋형 학문의 도제식 벽돌쌓기가 식민사관의 카르텔이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류사를 통털어 예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어온 가장 오래된 도구의 재료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충족시키는 물질은 다름아닌 나무입니다.
구석기에도 신석기에도, 청동기, 철기, 심지어 현대에도 무수히 많은 나무로 도구들이 만들어 졌지만 팔만대장경을 제외한 목기 유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자연적 해체가 가장 빠른 나무라는 재료의 특성때문 입니다. 이 나무를 가장 잘 다루는 민족이 우리 한민족 입니다. 동이족을 칭하는 활의 중요한 부분이 나무에서 출발해 물소의 뼈등으로 발전했고, 단군이란 호칭에 '박달나무 단'자가 사용된 것도 의미심장 합니다.
토인비의 모자라는 2%를 생각하다 깨달은 것인데요, 단군이 실제 했었다는 것을 풀어 나갈 수 있는 고대와 상고시대의 열쇠가 바로 목기 입니다.
도구의 재료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은 엄밀히 따진다면 구.신석기와 목기시대, 석기와 청동기와 목기시대, 석기와 청동기와 철기와 목기시대, 그리고 다시 세라믹 반도체로 이어지는 석기 주도의 현대에도 상기한 모든 재료시대의 도구가 공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양 역사학이 나누는 재료시대의 단위는 어떤 재료가 주된 패권적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에 관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간과한채 매몰되면 철기시대에는 석기나 청동기가 아예 사용되지 않았다는 비이성적 무의식이 형성되어 버립니다.
유독 홀대받는 목기는 다른 재료와 달리 유물로 이어지지 않은 탓도 있고, 보조적 형태로 재료시대의 주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고대사의 패권기술로서 간과할 수 없는 역할이 있었던 것을 입증하면 우리의 상고사를 상식으로 정립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목기가 열어주는 상고사의 중심에는 단군이라는 역사적 실체가 있음을, 또한 단군 이전의 강력한 국가형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상식선에서 풀어줍니다.
박달나무 임금이라는 '단군' 호칭의 어원적 변화는 논외로 하고 박달나무의 특성과 서식분포를 우선 알아보도록 하죠.
박달나무는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에 분포해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중국 북동부라면 우리가 추정하고 있는 단군시대의 영토에 해당합니다. 삼위태백산이 등장하는 것도 높은산 깊은곳에서 자라는 박달나무 서식지로 연관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베트남 전에서도 등장하는 죽창은 총이나 도.검같은 마땅한 무기가 없을경우 인간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무기중 하나입니다.
철제날을 나무끝에 붙인 창도 따지고 보면 나무끝을 뾰족하게 깍아만든 나무창의 발전된 형태일 뿐입니다.
따라서, 짧은 거리의 공격력만 가지고 있는 석기무기에 비해 아주 단단한 나무로 만든 기다란 창은 그 시대의 패권무기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습니다.
물론, 단단한 나무를 한칼에 양단할 능력이 없는 청동검의 무딘 날도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후기철기 시대에 가서야 시퍼런 날로 창의 위력을 넘어설 수 있었을것 같습니다.
철기시대 전반부 까지 쇠처럼 단단한 나무의 서식지를 확보한 세력이 국가의 형태를 이룰 수 있는 패권무기를 가진 구심력 이었다는 것입니다.
단군이 상징하는 박달나무의 임금이란 목기시대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는 나무로 만든 패권무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죠.
박달나무로 만든 기다란 창과, 활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목기활용 기술이 어우러 지면서 철기시대 전반부 까지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역사의 숨은 그림입니다.
우리가 서양사관의 한계를 벗어나려면 우선 목기시대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양의 역사는 목기시대를 정립하지 않아도 남아있는 유물로 전체고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길어야 구.신석기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근원이 없는 것이죠.
나름대로 목기유물의 타당성을 개념화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놓았는데, 노하우 블로그가 개시되면 거기에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사관이란 무엇인가?"를 읽으셨군요. 관점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주는 다양한 사관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책이라 제게도 사유방식을 정립해 준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논문해설로 구성된 책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중 사관의 단위를 가장 커다랗게 확장시킨 토인비의 '문명사관'으로 대부분의 역사를 바라보면 확실한 척도로 역사를 규명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실증적 고고학이 뒷받침 하는 서양 역사학의 특성상 문명초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후대에 전해지지 못한 목기시대를 정립하지 못해 이빨빠진 것이 한계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가진 사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들은 그의 권위에 눌려 이성적 접근으로 보완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서양식 피라밋형 학문의 도제식 벽돌쌓기가 식민사관의 카르텔이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류사를 통털어 예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어온 가장 오래된 도구의 재료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충족시키는 물질은 다름아닌 나무입니다.
구석기에도 신석기에도, 청동기, 철기, 심지어 현대에도 무수히 많은 나무로 도구들이 만들어 졌지만 팔만대장경을 제외한 목기 유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자연적 해체가 가장 빠른 나무라는 재료의 특성때문 입니다. 이 나무를 가장 잘 다루는 민족이 우리 한민족 입니다. 동이족을 칭하는 활의 중요한 부분이 나무에서 출발해 물소의 뼈등으로 발전했고, 단군이란 호칭에 '박달나무 단'자가 사용된 것도 의미심장 합니다.
토인비의 모자라는 2%를 생각하다 깨달은 것인데요, 단군이 실제 했었다는 것을 풀어 나갈 수 있는 고대와 상고시대의 열쇠가 바로 목기 입니다.
도구의 재료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은 엄밀히 따진다면 구.신석기와 목기시대, 석기와 청동기와 목기시대, 석기와 청동기와 철기와 목기시대, 그리고 다시 세라믹 반도체로 이어지는 석기 주도의 현대에도 상기한 모든 재료시대의 도구가 공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양 역사학이 나누는 재료시대의 단위는 어떤 재료가 주된 패권적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에 관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간과한채 매몰되면 철기시대에는 석기나 청동기가 아예 사용되지 않았다는 비이성적 무의식이 형성되어 버립니다.
유독 홀대받는 목기는 다른 재료와 달리 유물로 이어지지 않은 탓도 있고, 보조적 형태로 재료시대의 주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고대사의 패권기술로서 간과할 수 없는 역할이 있었던 것을 입증하면 우리의 상고사를 상식으로 정립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목기가 열어주는 상고사의 중심에는 단군이라는 역사적 실체가 있음을, 또한 단군 이전의 강력한 국가형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상식선에서 풀어줍니다.
박달나무 임금이라는 '단군' 호칭의 어원적 변화는 논외로 하고 박달나무의 특성과 서식분포를 우선 알아보도록 하죠.
박달나무는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에 분포해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중국 북동부라면 우리가 추정하고 있는 단군시대의 영토에 해당합니다. 삼위태백산이 등장하는 것도 높은산 깊은곳에서 자라는 박달나무 서식지로 연관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베트남 전에서도 등장하는 죽창은 총이나 도.검같은 마땅한 무기가 없을경우 인간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무기중 하나입니다.
철제날을 나무끝에 붙인 창도 따지고 보면 나무끝을 뾰족하게 깍아만든 나무창의 발전된 형태일 뿐입니다.
따라서, 짧은 거리의 공격력만 가지고 있는 석기무기에 비해 아주 단단한 나무로 만든 기다란 창은 그 시대의 패권무기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습니다.
물론, 단단한 나무를 한칼에 양단할 능력이 없는 청동검의 무딘 날도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후기철기 시대에 가서야 시퍼런 날로 창의 위력을 넘어설 수 있었을것 같습니다.
철기시대 전반부 까지 쇠처럼 단단한 나무의 서식지를 확보한 세력이 국가의 형태를 이룰 수 있는 패권무기를 가진 구심력 이었다는 것입니다.
단군이 상징하는 박달나무의 임금이란 목기시대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는 나무로 만든 패권무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죠.
박달나무로 만든 기다란 창과, 활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목기활용 기술이 어우러 지면서 철기시대 전반부 까지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역사의 숨은 그림입니다.
우리가 서양사관의 한계를 벗어나려면 우선 목기시대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양의 역사는 목기시대를 정립하지 않아도 남아있는 유물로 전체고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길어야 구.신석기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근원이 없는 것이죠.
나름대로 목기유물의 타당성을 개념화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놓았는데, 노하우 블로그가 개시되면 거기에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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