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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현실적 통일의 길

가만히 있는 것도 실력이다.

한국의 혁명여건

 

진보좌파는 박정희 부녀를 정치적으로 탄핵 했고, 현실은 진보좌파를 경제적으로 멸족시키는 중이죠. 정치관념과 경제현실의 대결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잠시잠깐 관념이 현실을 눈가릴 수 있지만, 영원히 현실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좌파신문 관념가에 불과한 청와대 대변인의 현실 눈속임이 무너진 이유죠.

 

글쟁이, 그림쟁이, 이름쟁이등 예술가들이 외치는 혁명만큼 알맹이가 없고, 무책임 하고, 동력없는 사회운동도 없습니다. 준비도 없이 선동부터 해댑니다.

 

진짜 혁명은 말만 큰 놈들을 싹 베어버리고,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행동가들을 핵심전위에 세울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죠.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단 한마디라도 새어나온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 기회주의죠. 좌파신문, 수많은 단체등 밥벌이 기회주의일뿐 개혁, 혁명과 거리가 멉니다. 믿으면 바보가 됩니다.

 

보이지 않게 핵심전위를 행동으로 깔고 멀찌감치 떨어뜨려 선전선동을 할때, 드러난 선동조직이 파괴되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곁가지만 드러내는 방법이죠.

 

아무리 선동조직을 파괴접수 해도 행동핵심에 다가갈수 없는 구조라야 자본주의 내에서 혁명이 가능합니다. 자본주의 밖에 있는 나라들과 다른 현실에 맞춰야죠.

 

그런데 미국의 CIA, 한국의 국정원등에 의해 남한은 개미새끼 움직임 조차 드러나는 완성된 감시망입니다. 뭘 한다는 게 미국 손바닥이죠. 그냥 다 드러납니다.

 

이런 현실을 알면 혁명이니, 개혁이니, 촛불이니 하는 환상떨기를 안하게 됩니다. 눈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라 창피해서 안하죠. 결과가 뻔한데 자신을 속이나요?

 

해봐야 CIA, 국정원이 막대한 자금을 소모하며 확보해야 하는 적성세력 명단을 자진해서 만들어 바치는 박헌영식 앞잡이질일 뿐입니다. 도와주는 반미인 것이죠.

 

때되면 모습을 드러낼 다음질서 인적자원들을 공안 손바닥에 바쳐 뿌리뽑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꽃도 때맞게 피는 이치를 알면 혁명의 때도 알아야 합니다.

 

혁명과 경제

 

경제를 공부해서 비용이라는 괴물을 알게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명단바치기를 안해서 공안자금이 바닥나게 내버려 두는 게 진짜 일격임을 저절로 알게됩니다.

 

좌파신문이나, 급진 친북세력이나 때아닌 조급증에 뛰쳐나와 엄동설한에 꽃이여 피어나라 떠드니 바보가 되고, 변절자가 되고, 돌연변이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박정희가 제거되기 직전에 경제개방 계획채택을 놓고 고심했다고 히더군요. 그 내용이 바로 박정희 제거후 펼쳐진 신자유주의 경제지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국가소유 공기업, 은행등을 외국자본에게 넘겨주며 떡고물을 챙겼으면 결과는 달랐을 겁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제거하려 해도 미국이 막아줬을 가능성이 높죠.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의 역사적 출발이 국가경제를 고수했던 박정희 제거입니다. 그이후 시장경제로 달려갔으니까요. 민주주로 판단할수 없는 사건입니다.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이익, 국제자본의 이익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가 결정한 사건일 뿐인데요. 민주주의로 경제식민지화를 재다보니 답이 안나오죠.

 

한반도 전쟁(6.25), 이승만때 퍼부은 막대한 자본을 회수하기 위해 박정희를 내세운게 미국입니다. 박정희는 한국경제를 키워 황금알을 빼내려는 미국에 엇나갔죠.

 

밑도 끝도 없는 박정희 거악론은 미국의 경제추수 단계를 민주화로 눈가려줬습니다. 그자리에 노무현, 문재인이 있었어도 투항하거나 제거당했을 단계였었습니다.

 

이걸 노무현도 좌파신문 기자도 청와대에 들어가서야 안듯 합니다. 그래서 미국님의 뜻인 부동산에 미래를 투항해 버린 것이겠지요. 어제와 다른 변신인 것이죠.

 

혁명의 역기능(오류)

 

현대전쟁의 시작은 경제전쟁입니다. 어느쪽이 바쁘게 움직이느냐에 경제고갈이 달려있죠. 바쁘기 바쁜 나라는 무력전쟁도 하기전에 경제가 무너져 망해버립니다.

 

미국이 폭격기 띄워 핵전쟁 연습만 해도 북한전체가 대응훈련에 나서야 했습니다. 그시간 만큼 경제생산에 차질이 생기죠. 그래서 핵완성후 경제를 챔기는 겁니다.

 

핵무력 균형이 완성된 지금 바쁜건 미국이죠.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공격등 아주 바쁩니다. 이런게 다 돈이죠. 미국경제를 갉아먹는 자본비용 덩어리들 입니다.

 

북미간 군사전쟁은 핵무력 완성선언때 끝났습니다. 이후부터는 경제전쟁에 들어섰습니다. 북한경제 보다는 자본주의가, 미국경제와 남한경제가 더 위기입니다.

 

할일은 많아지고 쓸돈은 말라가는 것이 미국패권의 현주소 입니다. 오죽 했으면 미국이 만든 ISIS가 시리아 유전을 도둑질해서 전쟁비용을 만들었겠습니까?

 

사람모아 공안명단 안만드는 것이 진짜 통일실천 입니다. 일본의 군사개입을 활짝 열어준 동학, 미국의 경제 신자유주의 강제를 눈가린 5.18은 혁명이 아닙니다.

 

그 결과가 일제식민지고 경제지옥인데 무엇을 절대화 할수 있겠습니까? 제국주의의 수명을 늘려준 자충수를 혁명이라 추앙한다면 실패한 결과만 받게되죠.

 

국민들이 5.18처럼 들고 일어났었다면 소련은 해체되지 않고 더 버틸수 있었을 겁니다. 군부가 강경진압 명분을 쥐고 충격과 공포로 해체열기를 진압했겠지요.

 

소련이 급작스레 해체된 원인중 하나가 국민들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부가 움직일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핵무기를 가지고도 그냥 해체되어 버린 것이죠.

 

물론, 막강한 핵무기 때문에 소련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 유혈사태를 키울 엄두를 못낸 것이기도 하겠지요. 자잘한 봉기를 반복하면 체제면역력만 키워줍니다.

 

유비가 말타던 시절에는 지방 곳곳의 민란봉기가 나라를 무너뜨렸지만 교통과 운송이 발달한 현대는 다르죠. 대량살상 무기까지 시공장악력이 강력해 졌습니다.

 

시대(창검, 총포)와 혁명

 

창검시대와 총포시대의 혁명여건은 엄연히 다릅니다. 창검시대에는 낫, 괭이등 농기구도 무기였습니다. 언제든 민중의 무장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경제구조도 다르죠. 농경목축 경제는 민란봉기가 잦을수록 연단위 생산에 타격을 줍니다. 공업화된 생산력은 산업시설이 망가지지 않으면 무한가동 됩니다.

 

이 차이를 명확하게 가르는 시대가 조선말~해방 이승만 시기입니다. 동학농민들이 든 창검과 낫, 괭이는 일본군의 기관총 앞에 무기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이승만 시기 제주4.3등 민중봉기, 여수순천 군부대의 항거도 사실상 맨주먹이었습니다. 예비군 무기고, 경찰서 무기를 획득한 5.18도 무장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일제가 남겼거나 미군에게 받은 구식소총이 전부였을 무장력으로 대항하기에는 철도, 항공보급등 미국의 입체전 능력이 너무 막강했습니다. 혁명현실이 바뀐겁니다.

 

창검시대의 혁명관으로 나섰다가 총포시대의 불가항력을 경험한 것이 동학~5.18입니다. 근 120여년 동안 구시대 혁명개념으로 착오적 희생을 반복한 셈입니다.

 

역사로 부터 배우지 못하고 절대성역화 해서 기리기 바쁘면 반복적 희생을 정당화 시킵니다. 패배적이고 자멸적인 역사관이죠. 남한이 방황하는 역사의 늪입니다.

 

그 희생은 존중하지만 패배에 대한 비판은 역사적 필수입니다. 패배를 비판하지 못하면 되풀이 하게 됩니다. 남한 진보좌파가 헬조선 주구가 된 이유입니다.

 

창검은 사용할수록 망가집니다. 민란봉기가 잦을수록 빨리 망가지죠. 총포는 사용하지 않으면 망가집니다. 총알, 포탄등에 사용하는 화약은 유효수명이 있습니다.

 

오래되면 격발시 폭발하거나 불발되죠. 노후탄환, 장약을 폐기하는 것도 돈입니다. 비용덩어리죠. 민란봉기때 사용해 버리면 이런 비용지출을 피할수 있게됩니다.

 

미국이 한반도 전쟁(6.25)을 노후재고무기 폐기기회로 활용했듯 5.18같은 사건은 체제무장력 강화로 악용되기 마련입니다. 혁명이 돈벌이에 부역하는 셈이죠.

 

혁명과 인물

 

현실에 기반한 사상, 철학적 분석을 하는 사람은 혁명에 있어 인물(중심)론을 배격합니다. 사상, 철학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절대적 신뢰를 멀리하게 됩니다.

 

그 자신이 주장한 기준에 찔리지 않는지,, 사상, 철학적 목표에 우선해 파당분파에 매달리는지,, 주장합리화를 논리로 포장해 사적선전선동에 열심인지 살피죠.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인물을 파악하고 그세력의 앞날을 알수 있습니다. 문재인의 내로남불, 적폐가 적폐청산에 나서는 모순을 시작부터 비판해온 판단기반이죠.

 

사상, 철학적 기준은 하나입니다. 사상, 철학 창시자라고 해도 일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동일시 할수 없는 엄격함을 가집니다. 체화한 인물을 가려쓸수 있습니다.

 

백년, 천년이 가도 인물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사상, 철학이 작동합니다. 사상철학과 인물을 떼어놓아야 객관성이 확보되죠. 하나로 뭉뚱그리면 성역화 됩니다.

 

부처 이전에 선각자가 있었을 텐데요. 선각자를 절대화 시켰었다면 부처는 없습니다. 선각자의 그림자에 가려버리죠. 절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부처가 있는겁니다.

 

모든 사상철학과 인물을 떼어놓고 상대적 평가를 할때 다음 사상철학과 인물을 만날수 있습니다. 부처보다 더한 인물이 나오면 부처보다 더 평가해주면 됩니다.

 

부처같은 인물이 나오기 힘들고, 부처보다 더한 인물이 나오기는 더 기대난망이지만 단정할순 없습니다. 이런 객관적 기준을 가져야 인류의 발전이 가능합니다.

 

부처를 절대화 하면 다음 인물이 나올때마다 박해를 일삼게 됩니다. 혁명에 있어서도 인물중심론, 인물절대화는 파당분파 함정을 만들죠. 발전을 가로막게 됩니다.

 

나를 믿고 따라라, 누구를 지지해야 한다는 정치선동은 인물중심론이죠. 정책으로, 결과로 입증해 보여주면 따르라 마라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과없는 말잔치죠.

 

현실에 막혀, 기득권의 방해 때문에 한게 없다는 변명은 모순입니다. 국회의석을 몰아준 노무현도 한게 없고, 적폐인사를 일삼는 문재인은 정치파산 직전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정체성에 흠결이 없는 성과를 내는 것이 출발입니다. 그렇게 한걸음씩 나가면 국민들이 일아봅니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어야 합니다.

 

말 한마디, 걸음 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영웅적 풍모는 숨겨지지 않습니다. 대중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잔잔한 파도처럼 끝없이 퍼져나갑니다. 무한동력입니다.

 

작은 기준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되도록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행동이 크면 작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 사막에 떨어뜨린 모래의 위치는 놓치기 쉽습니다.

 

모래를 기준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오랜시간 모래를 중심으로 발자욱을 다져놓아야 모든 사람들이 모래 이정표를 알아보게 됩니다.

 

아주작은 모래가 중심이된 이정표는 사상철학을 말합니다. 삶으로, 일상으로 이정표를 세운 사람이 혁명을 말할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 자체가 혁명이니까요.

 

이런 사람이 있다면 혁명을 꿈꿀수 있습니다. 인적기반이 마련된 셈입니다. 하지만 꿈은 현실이 아니죠. 시대여건이 맞아야 실행해 볼텐데 남한과 거리가 멉니다.

 

밥먹듯 외치는 선동구호적 혁명이 아닌, 혁명을 끝까지 고찰한 현실적 판단이 있다면 아마도 가만히 있으라는 한마디일 겁니다. 가만히 있는 것도 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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