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워 한개라도 만들어본 사람은 즉, 현장현실에서 컴퓨터를 다뤄본 사람은 무작정 알파고에 혹하지 않죠. 실제를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짜준 경우의 수만 처리하는 벽창호가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하드웨어는 전기 보내기, 막기 이진법 스위치 덩어리고... 아직 헛점이 많습니다.
바둑이 경우의수가 무한에 가깝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판떼기 위에 국한된 바닷가 모래알 크기일 뿐이죠. 호사가들의 관념적 수사일 뿐입니다.
왜? 바둑은 고정변수 덩어리일 뿐입니다. 경우의 수가 많아봐야 바둑판 칸수 × 바둑돌 × 수순이죠. 규칙인 바둑판에 한정됩니다. 판밖에 우주가 있는겁니다.
이게 왜 별거 아니냐? 알파고 같은 슈퍼컴퓨터로 무한대의 기보입력, 광속대국으로 자료를 축적하면 머지않아 다 파헤칩니다. 숫자화가 완성됩니다.
그후 현실로 나와보죠. 불리하면 바둑판 엎어버리는 사람도 있죠. 바둑규칙을 어긴건데요. 가장 심한 어김판떼기는 어디일까요? 탈법, 탈규칙 혼돈의 세계는?
정치죠. 알파고가 바둑을 평정하고 현실에서 장점인 직렬, 병렬연산을 한다면 정치세계는 전기 스위치를 꺼버립니다. 규칙없는 무형무한의 현실변수가 펼쳐집니다.
개혁, 혁명이 안되는 현실세계에는 수많은 스위치가 존재하죠. 북한체제 이론을 정립했다는 황장엽도 현실 스위치에 꺼졌고, 막스도 관광자원이 되었습니다.
체제이론은 이미 나올만큼 나왔고 관념에서 빠져나와 현실연산 중입니다. 민주주의도 이론대로 법대로 하면 참 근사하죠. 이상세계를 이룹니다.
근데 현실에서 안되는 거라... 어떤 정치이론이든 반인본이거나 엉성하지만 않다면 그틀을 제대로 지키면 잘돌아갑니다. 정치이론은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철인수준으로 올라선다고 해도 힘가진 놈이 틀면 안드로메다로 가죠. 인본주의 세력이 힘을 가져야 가능한 겁니다.
즉, 인본을 바라는 세력이 알파고에 없는 현실스위치(힘)를 확보하기만 하면 어떤 방법론(체제이론)이든 써먹을수 있다는... 답은 현실에 있습니다.
때문에 철인보다 힘을 가진 인본주의 세력과 법규칙 잘지키는 폐지줍는 노인이 인본세계를 열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한국의 민주자원은 40~60%쯤 되죠.
그런데 한국현실상 인본주의 세력이 힘을 가지는 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여당 , 이중대등 내부스위치 + 막강한 외부 스위치까지... 빈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알파고 처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직렬, 병렬로 연결해 봐야 원격스위치와 뒤섞여 왜 당하는지도 모르고 조종되죠. 부처님 손바닥 위입니다.
컴퓨터는 사람이 사용합니다. 알파고에서 힌트를 얻어본들 정치권력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체제이론, 컴퓨터로 머리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늪은 깊어집니다.
아직까지 인간은 이론의 함정을 피할수 없습니다. 일정한 범위(다른분의 표현으로는 국)를 정해(시간, 크기, 지역, 조건등) 규칙을 내는 것이 이론이기 때문이죠.
아직도 평가받는 막스도 미래인 지금의 현실에 어긋났고, 아인쉬타인의 이론도 인류의 현실인식 능력이 과학도구의 발전으로 확장되면 재평가가 불가피하죠.
무형무한 변수인 정치를 컴퓨터식 단순이진 처리로 직렬, 병렬로 연결해도 그 신호처리를 하는 스위치 소자가 오동작 하면 말짱꽝입니다.
흔히 어르신들을 무지렁이라며 폄하하는데 하나만 아는 소리죠. 앎은 욕망과 결합합니다. 많이 알수록 욕망의 종류와 크기는 더해집니다.
그래서 불가의 해탈이 나온것입니다. "앎 + 욕망 = 암(병)"이기 때문입니다. 앎과 욕망의 결착을 깨서 이치에 다다라야 부처가 된다는 뜻이죠.
고지식하게 법지키는 만큼의 권리요구만 가능한 사람들이 부처요 민주주의 세계를 여는 미래자원입니다. 이분들에게는 정치적인 요구를 할수 없습니다.
선거투표로는 지금의 체제질서를 바꿀수 없기때문입니다. 민간인들이 힘으로 체제질서를 바꿔야 하는 의무가 없으니까요. 해방후 충분한 시행착오가 있었죠.
따라서 암에서 벗어나 있는 분들을 비난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이론, 철학, 신념 같은 것이 없고 이용만 당하고 있을지라도 이분들은 사회암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국가질서를 어지럽히고, 법을 어기고, 전횡을 일삼고, 사기를 치는 건 하나같이 아는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만족하지 못하고 더 알려는 사람들이죠.
아는게 많아 나라를 망치는 것인데 아는 걸로 상대하면 이길수가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이시대에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깨달음이죠.
수천만개의 현상에서 그것이 돌아가는 이치는 서너가지에 불과합니다. 복잡다단한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 또한 몇가지 안됩니다. 이 이치들이 기본이죠.
인본틀에서 법을 지킨 만큼 권리를 찾는 것이 기본이치를 지키는 길입니다. 여기에 가장 가까운 것이 못배우고 모르는 어르신들이라면 충분이 예우받아야죠.
불과 수십년전 우리의 정서가 그랬습니다. 어르신들이 그런 정서를 가지셨죠. 다만 지금의 사회가 그것을 억제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중한 자산이죠.
인본적 정서 즉, 우리민족의 정이 바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절대자산입니다. 이것을 현실에 두고 서양의 관념속을 헤매는 것은 거꾸로 가는 퇴보죠.
그어떤 민족도 가지지 못한 우리의 정은 인본을 억제하지 않는 힘을 만날때 활짝 꽃피울 것입니다. 서양의식에 절인 진보좌파는 사실 퇴보요 수구일 뿐입니다.
머리속 관념, 서양식 바깥 주의와 수단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미 있었고 그것을 억제하는 힘의 변화는 언젠가 저절로 됩니다.
해방후 수백만의 희생으로 우리는 힘의변화를 만들수 없음을 이미 학습했습니다. 기다리면 될일을 또다시 희생으로 복습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죠.
한국의 실제를 깨닫고 우리의 정을 간직한 어르신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이땅의 지성들이 할수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지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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