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가들은 상황을 이론의 틀에 맞추어 가지치기를 해버리죠. 그래서 극히 기본적인 것을 무시해 버립니다. 하다못해 미물(인간중심의 사고방식에 의한 오만일 뿐이지만...)이라는 소나 개도 자신을 팔아버리거나 잡으려고 하면 저항을 합니다. 이런 극히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면 이론만 잔뜩세운 책상물림이 되죠.
한국은 미국이 시키면 무조건 충성한다는 논리는 그래서 성립되기 힘듭니다. 이런 오류의 근원은 미국이 하나의 노선으로 일사분란하게 간다고 단정해 버리는 단순화에 기인합니다. 한국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이익다툼을 하듯 미국도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나뉘에 이익이 상반될 때는 티격태격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처럼 미국의 정책에 일차적으로 좌우되는 나라는 이러한 미국의 세력갈림이 만들어 내는 가지치기에 연결되어 비슷한 구도를 가지게 됩니다. 미국의 주전강경파와 타협화친파의 다툼에 의해 여러가지 신호가 표출되면 그것은 그대로 한국에 전이되어 버리죠. 미국이 줄기면 한국은 가지인 셈입니다.
맞다 틀리다는 판단을 보류하고 대충 건너뛰어서 한국이 미국에게 무조건 충성을 한다고 전제를 해도 이렇게 두개의 세력중 어느 한쪽이거나 아니면 그때그때 힘이 더 센 쪽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이론파들은 이러한 것들을 뭉뚱그려 자신이 원하는 결론만 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항해금지구역 선포에 이은 북한의 해안포 발사에 남한이 대응사격을 한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대응사격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북한이 주장한 해안경계선을 남한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이것을 살피지 않고 대응사격은 전쟁응수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무리가 많습니다.
비등한 핵과 투발수단을 가진 두 세력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10분 내외에서 승패가 갈려버립니다. 덕분에 지구는 바퀴벌레 같은 초강력 적응생물 이외에는 살수없는 상태로 변하게 될겁니다. 쥐가 막다른 골목에 몰릴때 목숨을 버리는 공격을 감행하듯 지구를 깨버리는 건 한쪽만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래전 차원을 넘어선 핵전면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전쟁에 대해서는 커다른 의미를 두지 않게 됩니다. 전쟁이라는 수단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공멸일 뿐이고 어느 한쪽이 살길을 선택해 물러서면 이것이 만들어 내는 결과는 정치외교에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속성에 대입할 경우 미국은 정치외교적 선택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대리전등 한국의 군사력이 움직이는 대북충돌은 인계철선에 의해 미국의 존망이 걸려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상태죠. 한반도의 군사적 정세는 이정도로 바라보는 것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프간과 파키스탄등 중동의 정세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주적으로 내세워 포위해 들어가는 듯 보였지만 실제 지도를 놓고 포진한 나라들을 보면 이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부시정권 집권이후 9.11이 발생했고 그때부터 본격화된 움직임이죠.
이라크의 핵무장 움직임 때문에 미국이 급박하게 움직였다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대량살상 무기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핵무기 라는 것은 자체개발 만으로 보유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세인이 핵미사일을 구입하는 데 성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을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9.11이후 미국의 움직임은 뚜렷한 동선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9.11 이전에 어떤 국제정세 동향이 있었을까요? 핵무장에 성공한 파키스탄 - 1차 걸프전 때도 축출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후세인이 미국에 의해 제거된 이라크의 핵무장 시도 - 현재 핵무장 시도 의혹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이란...
여기에 다 연결될 수 있는 공통상수는 북한입니다. 구호는 중국 이었지만 실제는 북한이었다는 것이 미국의 이러한 동선을 통해 엿볼수가 있습니다. 클린턴에서 부터 시작된 미국의 모든 대외정책의 방향을 고정시켜 버린 것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보유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죠.
전쟁이나 외교등 모든 싸움의 기본은 공격이냐 수비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쪽이 공격을 하고 있고 어느쪽이 수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어느쪽이 먼저 움직여 다른쪽이 대응하게 되었는가를 살피면 그 싸움의 공격수가 누구고 수비수가 누구인지 알수 있습니다.
공격을 하는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을 것이고 수비하는 쪽이 수세에 몰려있는 것이 싸움의 일반적인 현상인데요. 수비자가 무력을 대응책으로 꺼내들면 전쟁으로 이어지지만 협상을 선택하면 공격자는 전쟁이 아닌 외교적 과실로 버금가는 결과를 얻어내려는 실질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낮은 확률을 가지고 있지만 전쟁의 가능성을 여론화 시키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라면값입니다. 설로 그친다 하더라도 서민들에게 일차적 타격이 가해집니다. 민족을 위하고 서민을 위한다는 주장이 전쟁설을 꺼내들면 그것 자체가 자기부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게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