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아는 사람은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총을 아는 사람은 함부로 쏘지 않습니다. 칼을 휘두르면 날이 무디어 지고 총을 쏘면 총열이 가열되고 총알의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빼어들면 정작 목숨이 위태로울 때 무딘 날이 명줄을 자르고 모자라는 총알이 심장을 뚫어 버리지요. 이러한 경우 아끼지 못한 자신이 스스로를 죽이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는 비웃음을 받게 됩니다. 물론 듣지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나서는 행동파들이 많습니다. 람보처럼 무한정 쏘아대기도 하고 망나니 처럼 계속 휘둘러 대지요. 총쏘고 칼 휘두르는 것만 보여주는 영화의 단면 기만술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그대로 총을 쏘기전 정비를 하고 쏜 후 총열을 청소하는 모습과 보유가능한 총알의 숫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 영화는 지루해 지지요. 장사 망합니다. 그러니 공포탄을 쏘아대고 진기를 실어 칼을 맞부딪히도 않습니다.
이게 언론의 실체요 정치의 본모습이요 그 추종자들의 정체죠. 자본주의 국가사회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결과물은 장사논리에 충실하죠. 알고보면 정치도, 종교도, 언론도 다 장사일 뿐입니다.
그래서 서프 서영석 대표의 개혁장사론이 나온겁니다. 급진적 개혁주장이 난무했지만 다 돈벌이를 위한 장사였을 뿐이죠. 자칭 개혁론자들이 맹비난하고 있는 조선일보와도 장사꾼이라는 데는 별반 다를게 없습니다.
내장사는 로맨스요 남의 장사는 불륜이라는 게 자본주의의 기본 철칙입니다. 같은 기회를 가지고 싸우는 이해세력들은 상대를 흠집내고 끌어내려 죽여야 더 많은 과실을 얻기 때문입니다. 기본중의 기본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탈레반에 피랍된 23명의 인질에 접근하는 제 세력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실수를 반복한 개신교측은 방어에 급급하겠지요. 이들을 공격해 들어가는 세력들에게 진정성이 있는가를 판단해 봅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살해된 배목사를 제외한 22명이 무사히 귀환하는 것입니다. 개신교측의 진심어린 반성이 있어야 하겠지만 도를 넘어선 반대세력의 공격이 이러한 사회적 명분을 희석시켜 버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모두에 아끼지 못하는 자는 스스로 죽인다고 했습니다. 개신교에 공격의 날을 시퍼렇게 세우는 세력이 있는 한 김선일을 참수시키고 배목사를 희생시킨 반복되는 실수를 준엄하게 따지기는 힘들겠지요. 지금이 그럴 때입니까?
결과적으로 개신교가 반성하지 않고 빠져나갈 절호의 기회만 만들어 줄 뿐입니다. 이미 배목사의 가족들은 인질들이 모두 풀려난 후 망자의 시신을 옮겨온다는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죽음으로 22명을 사지로 이끈 실수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이 인솔책임자 였던 고 배목사입니다. 그의 시신이 풀려난 인질들과 함께 올경우 개신교의 잘못을 따질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겠지요.
그 가족들의 진정성은 이해가 되나 이것을 십분 활용할 개신교의 생존꼼수가 국민들을 비웃을 것 같아 한숨이 나오는 군요. 여기에 십일조를 한 세력들이 바로 때를 모르고 말을 아끼지 못한 노빠들임을 이제 알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개신교를 욕하면 무엇합니까? 기회를 십일조해버리는 자충수가 다인 것을요. 이게 다 물불 안가리는 장사속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절제를 못하고 마구 휘둘러 정치개혁의 날을 뭉그러뜨린 사람들이 종교개혁은 안말아 먹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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