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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국제외교

작용과 반작용

모순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창이 뛰어나게 되면 방패가 이를 넘어서려 하고 방패가 뛰어나면 창이 새로운 목표를 넘어서려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상호 작용과 반작용에 의한 경쟁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내용 그대로를 해석 한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지적이겠지만 다른 각도로 해석해 보면 다양한 시각이 그럴듯하게 나올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을 남북한에 대입해 보면 새로운 접근이 가능할것 같은데요.

 

일설에 의하면 북한의 핵무기 완성이 83년 이라고 합니다.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운명을 달리했지만 후임정권이 핵포기를 조건으로 미국의 인정을 받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남한도 비슷한 시기에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을 겁니다.

 

남북한 공히 체제대결을 해왔고 경제적 대결과 군사적 대결의 팽팽한 경쟁이 적지않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한 정전협정과 조선의 영토를 양분한 단일민족의 지위가 통일에 대한 권리를 동시에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대치하고 있었다면 북한이나 남한 어느 한쪽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기미가 감지되면 나머지 한쪽도 안할수가 없었을 겁니다. 남한이 먼저 시작했는지 북한이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양국모두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겠지요.

 

가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기사가 나옵니다. 그의 집권이 몇년만 더 연장되었었다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었으리라는 라면발 이지요.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했다는 83년에 일이년 오차로 들어 맞습니다.

 

남북한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라고 보았을 때 거의 일치합니다. 83년 완성설에서 발전해 완성했다고 볼수도 있는 정황이 되지요. 그렇다면 거의 20여년 동안 와신상담을 했었다는 이야기 인데요.

 

비록 남한 정부가 핵보유를 포기하고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단순하게 핵만 가지고는 체제를 지켜내기 힘들다는 판단이 있었을 겁니다. 그 20년이 미사일을 완성하는 시기였던 것 같은데요.

 

무기의 최상위 단계인 핵을 보유하고도 20년을 자중했었다면 미사일 하나만 가지려고 했을까요? 그정도 시간이면 또다른 최상위급 무기에 투자하고도 남을 겁니다. 하나씩 정보의 편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요.

 

한반도의 안정을 걱정하는 분들중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 비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거론한 상호작용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탓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비밀리에 완성직전의 핵무기 개발에 주력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미국이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시해를 사주했다는 설도 있지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금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남북한이 국가체제 보전차원에서 도모했던 국방력 완성을 미국식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6자회담에 내놓은 미국의 해법이 강자의 몪만큼 과다하게 요구하는 힘자랑이 아닌지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