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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현실적 통일의 길

국제도로 순찰대(International Highway Patrol)

이집트를 달려 이스라엘에 들어섰을 때 전화가 빗발쳤다. 시리아에 들려 북한 조사단에 대해 알아보라는 주문이었다. 출장이 길어져 버렸다.

서둘러 빠른길을 알아봤지만 이스라엘에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국제도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레바논, 시리아와 분쟁중이었다.

할수없이 요르단으로 넘어가 시리아로 들어섰을때 헤어졌던 국제 조사단에서 연락이 왔다. 자기들도 조사명령을 받았으니 합류하자는 전화였다.

가장 늦게 도착한 유럽 조사단과 함께 현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시리아에서 두곳, 레바논 한곳에서 소문을 남긴 북한 조사단은 이미 떠난 뒤였다.

시리아는 내전의 후유증을 털어내고 있었다. 오랜 분쟁지역이었던 레바논과 함께 관광재건중이다. 지중해의 온화한 기후가 경쟁력이었다.

대륙을 통합하는 자율주행 국제도로는 국제사회와 주변국의 평화유지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분쟁지역, 분쟁국은 대륙통합 이익을 얻을수 없다.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 사우디가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팔레스타인과, 사우디는 예맨내전에 개입해 다투고 있었다.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했던 이스라엘은 중동의 싸움꾼이었다. 중동의 평화, 지역국협력, 산업화, 발전적 교역을 막는 것에서 이익을 얻고있었다.

군수산업 이익이 정치를 휘어감은 탓에 국제도로를 껄끄러워 했다. 대륙전체 이익을 관광여행으로 묶어 분쟁을 억제하는 평화여론이 커졌기 때문이다.

분쟁이익에 치중한 나라는 평화이익을 얻을수 없다. 평화이익은 당장의 이익인 분쟁을 포기해야 생긴다. 코앞의 이해관계가 전쟁기득권을 만들었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로 불렸었다. 역내안정만 확보되면 지중해 관광특수를 누릴수 있다. 국제도로에 적극적일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 요르단, 사우디, 쿠웨이트와 얽히고 설킨 분쟁관계가 제약으로 작용했다. 크고작은 테러, 범죄, 무장단체 출현에 시달리고 있었다.

리비아, 시리아, 레바논 지역 범죄집단의 연관성이 드러났다. 마약, 총기를 거래하며 각국 정보집단의 청부를 받아 내전에 관여하고 있었다.

북한 조사단의 범죄집단 소탕은 분쟁주도국을 벙어리 냉가슴으로 만들었다. 정의,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테러집단을 키우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국제조사단의 합의된 보고서, 국내용 보고서를 보내자 기다렸다는 듯 문자가 왔다. 국제도로 전지역의 자세한 여행영상을 담아오라는 것었다.

문화관광부, 방속언론 제공용이었다. 괜히 촬영경험이 있는 두사람을 골라뽑은 게 아니다. 몇달을 더 국제도로에서 보낼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민간인이 취재하기엔 치안이 불안정했다. 이해는 하지만 문자가 불쾌했다. 곤란한 일을 시킬때 하는 짓이다. 문자로 해고당하는 악몽이 떠올랐다.

아프리카 끝인 세네갈, 유럽 끝단인 포루투갈을 언제 완주할수 있을지 깜깜했다. 모로코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으로 가는게 빠르다.

시작은 침울했지만 여권으로 입경하면 대륙을 질주할수 있는 곳이 국제도로다. 국제도로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여권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국적이 국제도로였다. 스스로 국제시민이라 불렀다. 나라를 구분하지 않았고, 필요한 물품을 주고받으며 교류하고 있었다.

북한은 휴게소, 숙박시설을 국제도로 안에 두고 있었다. 직원들외 일반사람들을 만날수 없는 구조다. 치안, 방역, 안보에 치중한 방법이다.

하지만 관광수입에 제한이 크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인근 마을, 도시들을 국제도시 내부로 편입해 관리하고 있었다. 도박장, 유흥업소도 많았다.

국제마을, 국제도시에 국경선을 두른 나라도 있었고,, 개방해 관리하는 곳도 있었다. 장단점이 있지만 시행착오를 거처 보완해 가고 있었다.

국제도로를 나라로 삼아 유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제도로 집시라는 말이 생겨났다. 하나의 거대한 사회집단이 새롭게 태동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아닌 느낌이었다. 국제시민 이었고, 그들과 하나였다. 관광여행에서 생겨날수 없는 정서적 일체감이 국적을 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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