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꾼의 시야
들판에서 보는 세상과 산위에서 보는 세상은 다릅니다. 같은 세상이지만 눈에 보이는 게 다르죠. 코앞만 보이는 들판과 달리 산아래 전체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장기를 두는 사람은 바둑판, 장기판이라는 들판에 앉아있습니다. 판근시라 말할수 있죠. 자기중심의 계산, 이해관계에서 시작하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옆에서 편들고 돈거는 사람들도 판근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판근시를 벗어나려면 이해관계를 끊고 산으로 가야 합니다. 이익을 주렁주렁 달면 지쳐서 못올라가죠.
옛날 전쟁을 보면 깃발이 등장합니다. 전쟁중 대열이 흐트러 질때 깃발로 위치를 잡았습니다. 기수가 헤매면 깃발보고 뭉치다 몰살당하는 약점이 있었을 텐데요.
산꼭대기에서 깃발신호를 보내는 방법으로 보완을 했습니다. 전쟁이든 생각이든 가장 높은곳에 올라 판을 내려다 봐야 전체를 보며 판단하고 결정할수 있습니다.
집단광기와 집단이성
사람이 모이면 군중심리가 발동합니다. 내가 던진 돌 하나에 죽을리 없어 팔매질을 합니다. 수십, 수백명이 돌을 던지면 맞은 사람은 목숨이 왔다갔다 하겠지요.
누구돌에 목숨이 끓어졌는지 알수 없는 책임분산, 책임회피 심리 때문입니다. 혼자 길바닥에 앉지 않던 사람도 예비군복 입고 무리에 섞이면 창피한거 모릅니다.
이러한 책임분산, 책임회피 심리가 커지면 집단광기로 나타납니다. 책임주체가 흐려진 탓입니다. 군중에도 개인의식에도 주체가 있어야 이성을 유지할수 있죠.
개인, 집단이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체를 세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간단한게 가장 어렵죠. 자아비판을 통해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소화해 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잘못되어 가는지 실시간으로 알아차릴수 있습니다. 문제, 잘못을 지나치지 않고 반복해서 훈련해야 빠르게 반응할수 있습니다.
주체와 자아비판
주체란 자신을 산꼭대기에 올려놓는 극기훈련의 결과물 입니다. 이익에 얽힌 판근시를 벗어나 자신과 전체를 보는 개인의식, 조직의식이 바로 주체입니다.
이해관계 사슬을 끊어내려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묶여있던 생각에 자유를 주는 방법입니다. 제3자적 시각으로 봐야 자신이 얽힌 사슬을 볼수있죠.
그것들을 다 풀어내는 순간 판에서 벗어나 산정상으로 날아오릅니다. 나와 판과 판근시에 빠져있는 사람 전체가 한눈에 보이죠. 의식을 최상위 단계에 둘수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게 시공간이고, 사람은 시공간에 놓여져 있습니다. 의식은 시공간 변화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만큼 유동적이기 때문에 꾸준한 담금질이 필요합니다.
시공간의 변화, 의식의 변화를 지켜보며 판근시로 되돌아 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자아비판입니다.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를 되돌아 보는 객관화 작업입니다.
북한과 자아비판
자아비판은 한가지가 아닙니다. 주체적 자아비판과 종속적 자아비판이 있습니다. 남한사회가 아는 자아비판은 한가지죠. 종속적 자아비판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에서 행하는 고해성사가 종속적 자아비판 입니다. 불공을 드리면 죄가 용서된다는 책임회피가 종속적 자아비판 입니다. 나의 문제를 신에게 떠넘기는 외면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신에게 털어놓고, 해결을 신에게 의존하다 보니 종교에 약점잡혀 이용 당하거나, 평생 누적된 문제들에 짖눌려 더깊이 종교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북한은 주체적 자아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일제와 전쟁을 치르며 자아비판으로 조직과 전술을 개선해 결과로 검증했습니다. 철저하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죠.
자신들의 목숨을 책임지기 위해 자아비판을 하다보면 주체의식이 강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조직전체가 총화한 결과이니 절대성을 부여해 목숨거는 게 가능한 거죠.
주체적 자아비판이 없는 남한사회
좌우진영에서 떨어져 나와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갈수록 많아질 것 같은데요. 중도층이 커지고 있지만 주체적 비판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친일을 비판할때, 독재를 비판할때, 보수우파를 비판할때, 진보좌파를 비판할때 상종못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상에 대한 이해, 분석이 모자랍니다.
내가 그 시공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다를수 있을까? 자신을 대입해 보았을때 100% 자신할수 있다면 모를까 99.9%는 친일, 독재, 좌우와 다르지 않을겁니다.
나는 다르다, 내가 정의요 선이라는 생각이 종속적 비판 즉, 답없는 비난을 낳습니다. 나는 달라야지, 노력해 봐야지 이런 생각이 답을 생산하는 주체적 비판입니다.
북한의 주체적 비판이 핵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종속적 비판은 발목잡기를 하고있죠. 북한처럼 강성대국을 만들고 싶으면 종속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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