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가 핵협상 결실을 맺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북한은 지도자의 결정으로 완료되지만 미국은 뒤끝이 남는 체제죠. 의회비준 딴지가 남고, 탄핵도 있습니다.
북미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트럼프가 탄핵되면 핵협상은 봉쇄됩니다. 트럼프 탄핵은 미국의 기술적 시간끌기의 하나가 되어 북미간 대화통로가 소멸됩니다.
이후엔 미국의 그누가 나온다고 해도 북한이 협상에 응할수 없습니다. 합의를 탄핵으로 깨는 상대와 계속 대화할 나라는 없죠. 어떤 약속도 의미를 가질수 없게됩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각자의 길을 갈수밖에 없습니다. 직접적인 충돌 보다는 북한의 간접적인 개입에 의해 미국패권이 와해되는 방향으로 가겠지요.
미국이 핵비확산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 북미핵협상에 나선것이 증명하듯 강력한 핵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의 반미적 움직임은 미국패권을 해체하는 뇌관입니다.
미국내 반북세력이 기를쓰고 시간을 끈다고 해도 핵협상 결렬의 책임이 미국에게 있음을 전세계에 인식시켜 정치적 명분을 획득한 북한의 무력외교는 못막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북미핵협상을 타결한 트럼프를 탄핵하고, 남북관계 본격화에 뛰어든 문재인을 탄핵하는 것만이 미국의 희망이었습니다. 이런 정황들이 여럿 있었죠.
북미회담중에 트럼프의 개인변호사 였던 코언의 증언이 찬물을 끼얹었고, 북한에 호응하는 척하며 국민염장을 질러온 민주당세력의 이중적 태도로 드러납니다.
드루킹을 검찰에 고소해 문재인 최측근 김경수 구속사태를 만든게 추미애입니다. 노무현 내쫓기에 앞장섰던 탄핵세력이죠. 정치란 단순반복되는 덧뺄셈입니다.
박근혜 탄핵때도 추미애가 있었습니다. 위와같이 더하고 빼면 미국의 노무현 길들이기, 중국에 기운 박근혜 끌어내리기등 친미탄핵의 일정한 흐름이 있을법 하지요.
북한의 대남관계를 문재인의 반민생으로 엮어가는 탄핵흐름, 북미협상 타결을 트럼프 탄핵일정에 꿰맞추는 듯한 흐름은 미국의 막다른 처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북한은 두가지 방향을 동시에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조건이 관철된 북미협상 타결, 아니면 핵협상 무산 책임이 미국에 있는 국제사회적 명분획득입니다.
둘중 어느쪽이 되어도 북한의 승리입니다. 미국은 이 두가지 방향 이외의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있었다면 지금까지 시간끌기에 매달려 북한에 들락거리지 않았죠.
문재인, 트럼프 탄핵을 만들어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시간끌기가 미국의 최상이었고, 핵협상 타결이 차악, 핵협상 결렬이 최악입니다. 최상은 예전에 물건너 갔죠.
북한을 엮은 트럼프, 문재인 탄핵으로 핵협상을 영구봉쇄하는 동시에 무산 책임을 비껴가며 북한의 핵외교력을 거세하려던 마지막 기회가 베트남에서 패배했습니다.
북미정상 회담을 외교회복 기회로 활용하는 북한에게 문재인이 제안할수 있는 중재는 독일일수 있는데요. 제3차 북미정상 회담장소는 동독지역이 되겠지요.
분단통일의 상징이고, 전후복구의 모범이며, 서독에 흡수되었지만 동독은 사회주의 진영의 최전선이었습니다. 또한, 북한의 대유럽연합 외교의 발판이기도 하죠.
어디까지나 북한의 외교전략이 이러한 방향으로 갈 경우수를 가정한 글이니 그럴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독일은 아직 좀 먼거리죠.
남한이 제안한다고 해서 북한의 안보적, 전략적, 외교적 계획과 판단에 맞아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한, 북미정부 사이의 묵시적 교감여부가 결정하겠죠.
싱가폴, 베트남 두번에 걸친 북한의 외교방향으로 엿본 경우의 수는 위와 같습니다. 빠르게 북미협상 결과를 내야한다면 다음 장소는 판문점 또는 평양이겠지요.
문재인의 정권안보에 북미 정상회담을 연계하려고 하다가는 비핵화도 그르치고 친노세력의 멸족을 부르게 될겁니다. 사심을 버리고 임해야 제대로 할수 있습니다.
판세를 북한이 거머쥐고 있음을 인식하고 미국이 차악이라도 선택할수 있게 길을 연결하는 것이 문재인에게 주어진 역할입니다. 주인공병을 버리는 것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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