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카님의 질문댓글] 이제 북미간 남북간 어찌 되어갈까요? 긍정적인 방향인건가요? 정부가 잘 하고 있는건지요?
반보수 진영의 폭력성
반보수, 반독재 진영이라 하면 정당, 정치세력, 단체가 있겠지요. 정당으로서는 민주당, 민평당, 정의당이 되겠고,, 진보좌파, 민족주의 세력이 있죠.
단체는 진영, 관변 종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로 살펴볼 필요는 없습니다. 군사독재 폭력에 대항해온 반대진영은 민주적 인권에 충실했을까요?
최근 터진 민주당 구성원과 지지자들의 성적 폭력성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수있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폭력에 대한 개념부터 잡읍시다.
폭력에 대한 정의
집단을 기준으로 군사적 폭력, 조직적 폭력, 개인적 폭력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유형을 기준으로 물리적 폭력, 성적 폭력, 언어적 폭력으로 세분되죠.
위안부, 점령지 여성을 건드리는 경우 군사적 성폭력이라 할수 있겠고,, 정치세력이 절제를 넘어서면 조직적 언어폭력이 사회질서를 무너뜨립니다.
2018년 3월 이전까지 한국사회는 군사적 폭력만 다루었습니다. 이제 누적된 성적 폭력이 사회를 흔들고 있는데요. 이성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군사정치적 폭력만을 거악으로 규정하다 성적폭력을 구분할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요. 지금도 간과하고 있는 또하나가 있습니다. 언어적 폭력입니다.
성적폭력을 반인권이라 생각치 못한 탓에 진보좌파 진영의 폭로사태가 벌어졌듯 언어적 폭력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어렵습니다.
성적 폭력에 있어 보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진보좌파인데요. 언어적 폭력의 경우 보수보다 한술 더뜨고 있습니다. 조직논리가 민주적이지 못한탓이죠.
냉전은 가장 커다란 폭력
개인적 폭력 보다 조직적 폭력이 크죠. 군사적 폭력은 더 큽니다. 냉전이란 군사적 폭력이 양갈래로 뭉친 것입니다. 폭력중의 폭력이 바로 냉전입니다.
냉전을 주도했던 미국과 소련은 군사력 확장에 매달렸습니다. 그 노력을 경제에 투입했다면 인류전체의 복지가 실현되었을 겁니다. 어리석은 시기죠.
소련이 해체되었지만 테러라는 적을 급조한 미국은 냉전시대의 군사력 중심에 빠져있었습니다. 마지막 냉전국가이며 한국, 일본은 그 일부였죠.
2018년 3월 가시화된 북미대화는 탈냉전 시대를 여는 사변이라 할수 있는데요. 현실세계의 일이란 변수가 작용하니 만큼 차분하게 지켜볼 일입니다.
남다른 분석에 급급해 그것을 명성으로 삼아봐야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북한과 미국입니다. 개인이 낄자리는 없죠.
탈냉전 = 폭력종식
가장 커다란 폭력인 냉전이 끝나면 다른 국가에 대한 폭력,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은 설자리를 잃습니다. 지구전체를 폭력으로 휘감던 구조가 사라지죠.
이러한 시대변화의 중심이라할 북한과 미국 사이에 놓인 남한사회가 갈길은 뻔합니다. 체제로서는 탈냉전이겠고 정치적으로는 폭력종식이 되겠지요.
빨갱이 공격논리로 살아온 보수세력이 국보법을 버리는 것이 탈냉전 완료라 할수 있고, 내로남불 하던 정치세력은 언어적 폭력을 버려야 합니다.
세계적 변화인 탈냉전과 민족적 변화인 통일에 직면한 지금 남한 사회가 이념, 진영, 인물, 조직, 분파에 연연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반역입니다.
정치적 언어폭력은 이념, 진영, 인물, 조직, 계파를 위한 자기정당화 였습니다. 탈냉전, 통일과 아무 상관없는 헛짓이죠. 이제부터 존재이유가 없습니다.
내세운 정책이, 말과 행동이 탈냉전과 통일에 부합한지가 유일한 기준입니다. 문재인이니 박근혜니 하는 가지치기는 쳐다볼 가지조차 없습니다.
북미간 타협흐름은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엇나가는게 아니니 긍정적이라 할수 있겠지요. 북미관계가 남북관계를 만드는 만큼 변화합니다.
세계사라 할 탈냉전은 북한과 미국이, 민족사라 할 통일은 남북한 당국이 이끄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집단이 나서기엔 너무나 큰 공적영역입니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 군사독재 타도 같은 미시적 시위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문제가 보이면 날선 비판을 해야겠지요. 적당한게 좋죠.
내안의 폭력을 돌아보자
성적 폭력, 언어적 폭력, 위계에 의한 강압에 있어 자신을 돌아봅시다. 과연 가정과 직장등 조직집단에서 지위를 이용한 독재적 행태가 없었을까요?
위계라는 우월적 지위는 직장 상사는 물론이고 부모등 손위 사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집단의 운영관리 이익집행 권한을 가진 독재적 지위가 있죠.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지나친 독재는 없었는지, 자신의 가치를 가족들이나 집단조직 구성원에게 강제하지는 않았는지, 생활민주주의가 되었었나요?
정당, 중앙정부, 지방정부에 만연해 있는 위계적 강압, 폭력이 내게는 없었는지 반성할 일입니다. 요즘은 온라인이 대세니 인터넷 카페도 해당되죠.
모도지사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했다고 비판하기 전에 조직적 권한으로 강압적 행동을 했었는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또다른 내안의 독재인 거죠.
권력행사가 사사롭고 불평등 할때 물리적, 성적, 언어적 폭력이 나타납니다. 특히 인물중심 집단이 극성스럽죠. 탈냉전 시대에 뒤처지는 오류입니다.
내로남불 하는 언어적 폭력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남한은 통일 한반도에서 자리잡지 못합니다. 모든 폭력성을 버릴때 모순되지 않은 얼이 나타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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