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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현실적 통일의 길

현실에서 보이는 탈식민지

저마다의 모습으로 어우러진 것이 자연입니다. 그냥 보면 되죠. 그런데 사람의 시각, 인지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눈에 보인것도 알아차리지 못하죠.

 

우리의 의식은 대상이 있는 그자리에 집중해야 무엇이 보이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흐르고 변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연구자세가 필요하죠.

 

불교등에서 말하는 화두 즉, 생각거리로 현실을 조준하면 그 과녁에 들어오는 조각들이 형상을 만들어 줍니다. 탈식민지로 현실을 훑어보겠습니다.

 

우선 월남을 보겠습니다. 미국이 월남을 버린후 식민지가 끝나죠. 외세를 등에업은 세력이 완전히 몰락합니다. 물론, 미국으로 도망가 잘사는 이들도 있긴하죠.

 

두번째 조각은 이라크입니다. 미국의 정신적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친미였던 수니파까지 미국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죠.

 

시리아 공략을 위해 만든 IS가 군사적 테러수준을 벗어나 정치조직으로 급성장하며 독자노선을 걷게만든 핵심세력이 후세인시기의 군인, 관료들입니다.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서 친미였던 후세인 세력을 제거한 이후부터 이라크의 정신세계를 잠식했던 제국의 지배력이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세번째 조각으로 우리나라를 보죠. 남북한이 싸우고, 영호남이 싸우고, 이승만을 국민들이, 박정희를 김재규가 제거했지만 친미정신은 갈수록 견고해졌습니다.

 

이 세개의 조각을 맞추면 하나가 됩니다. 미국이 버리거나(월남), 미국이 직접 친미세력을 제거해야(이라크) 지배했던 나라의 정신적 예속이 끝납니다.

 

한국이 미국의 정신적 지배를 벗어나려면 버림을 받거나, 미국이 친미세력을 직접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미국만이 뿌리를 뽑을수 있습니다.

 

월남이 되거나 이라크 상황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국민들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줍니다. 때문에 한국의 무조건적인 반미, 탈미 운동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반미, 탈미를 위해서는 친미세력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과정에서 국민을 희생시키고 미국의 이익만 키워준 것이 70년간 기록된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것도 안하면 자존심 때문에 견디지 못하는 열혈국민이 있겠지요. 이런분들은 이라크에서 실마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미국이 친미세력을 직접 제거하는 상황을 만들면 되겠지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간단합니다. 내부분열, 다툼을 멈추면 됩니다. 어떻게 멈추는가?

 

한국에 장치된 분열구조는 선거민주주의 입니다. 대선으로 5년마다, 총선때문에 4년마다, 이것도 모자라 지방선거로 싸우느라 정신차릴 틈이없습니다.

 

국민들이 선거놀음에서 벗어나면 한국의 내부다툼에서 얻어지는 미국의 이익이 줄어듭니다. 또한, 선거민주주의에 의한 정권교체가 어려워집니다.

 

특정세력의 권력이 강화되어 장기독재가 열리면 박정희, 후세인 처럼 독자노선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민주화운동이 없었던 이라크상황이 되죠.

 

국민들의 선거민주주의 참여가 없으면 미국의 이이제이 수법 즉, 내부분열에 의한 자멸구도가 깨집니다. 미국을 대신해 정권을 제거해줄 도구가 사라집니다.

 

미국이 직접 나설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 집니다. 직접 후세인을 제거한 것이 중동정책을 파탄낸 결정적인 자충수 였는데 그만큼 다급했었겠지요.

 

투표거부 처럼 적극적인 반독재, 탈미 방법은 없습니다. 선거투표에 의한 정권교체는 녹슨칼(민심이 등돌린) 대신 새칼(민심기만용)을 미국에게 바치는 겁니다.

 

칼은 쓸수록 무뎌집니다. 정권도 마찬가지죠. 민심이 등돌려 점점 활용가치가 떨어져 가는 친미정권은 패권을 갉아먹습니다. 미국이 견딜수 없죠.

 

직접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이 탈미에 성공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투표거부였습니다. 하지만 때를 놓쳤죠. 이젠 시간이 없습니다.

 

북한의 핵이 남한을 압박하고, 미국경제가 가라앉으며 군사적 패퇴가 시작되었고, 러중이란등을 중심으로한 대체질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투표거부의 반독재, 탈미기능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치권의 선전선동에 휩쓸리지 않는 투표거부는 정당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관심이 생명입니다. 상품은 소비로 연결되는 관심이, 방송광고물은 시청자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외면받으면 상품, 방송광고물이 사라지죠.

 

정치도 그렇습니다. 유권자가 관심을 끊으면 정치자금이 줄어들고, 미국이 싫어하고, 다른 나라들이 관계맺기를 꺼립니다. 흥행이 안됩니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 주지 않는 정권과 맺은 거래는 언제든지 선거투표로 끊어버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투표율에 전전긍긍하는 것이죠.

 

투표에 대한 강박증, 의무감은 버려야 합니다. 투표 70년으로 된게 없다면 하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질서있게 이용당하지만 않아도 자주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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