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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현실적 통일의 길

한국역사 개략[槪略]

해방후 38선 이남 미군정 통치~친미 이승만 정부수립~4.19~박정희 군부 친미 쿠데타(5.16혁명)~1980년의 봄~전두환 군부 친미 쿠데타(12.12) 집권...

 

한국의 역사를 압축정리하면 위와 같습니다. 우선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을 보죠. 이것이 입증되려면 일제때의 산업화 결과가 오늘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일제의 필요에 의해 도로, 철도등 사회기반 시설 및 공장등이 건설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쟁등으로 생산물자를 빼내가면서 물질적 근대화 혜택이 없었죠.

 

또한, 6.25때 거의다 파괴되었고, 도로 및 철도등은 재건복구되었기 때문에 일제의 근대화 이익에 편승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6.25로 증발했죠.

 

정신적 근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일제가 교육을 통해 조선 지식인을 양성했다 칩시다. 해방~6.25이후 시기에 남한에서는 지식인 척살이 있었습니다.

 

그결과 놀음, 음주등 저급한 문화가 주류를 형성해 사회동력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교육에 힘써야 했죠.

 

일제에 의한 인적, 물적 근대화가 증발했기 때문에 적어도 남한에선 언급할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근대화는 일제를 제외하고 논해야 합니다.

 

한국역사에 있어 가장 뜨거운 감자는 박정희 정권입니다. 일제근대화를 부정할 경우 박정희와 그를 선택한 미국을 근대화의 주역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보수내에서 일제근대화, 박정희 근대화로 의견이 갈리고,, 진보좌파는 일제근대화와 박정희 근대화를 부정하며 미국과 남한 국민에 의한 근대화를 주장합니다.

 

보수는 미국에 의한 근대화를 숨기고, 진보좌파는 박정희에 의한 근대화를 부정하는 것인데요. 양쪽다 절반은 사실을, 절반은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수가 미국에 의한 근대화를 공인할 경우 일제근대화론은 아예 설자리가 없고,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도 빛을 잃게됩니다. 친일, 친미 주홍글씨만 커지죠.

 

진보좌파는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를 공인할수 없습니다. 군사독재에 정당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거악으로 몰아야만 정권을 획득할수 있는 현실적 제약입니다.

 

결국 한국정치에 있어 역사는 정쟁으로 쓰일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권의 태생적 한계 때문입니다. 지금 보여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증명합니다.

 

이견이 끼어들 명명백백한 논쟁없는 역사를 세우려면 보수와 진보좌파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미국에 의한 근대화를 직시해야 합니다. 사실대로 써야죠.

 

또한, 미국의 냉전패권정책과 그에따른 해방~미군정~친미정권에 의한 어두운 역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야 제도권은 할수없습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순간 보수의 자랑인 박정희가 위력을 잃게되고, 진보좌파의 유일한 무기인 박정희 거악론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도권의 역사논쟁은 고작 일제근대화론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역사정의를 찾아볼수 없죠. 정쟁만 있을 뿐입니다. 건국이 언제냐 하는 헛논쟁 뿐이죠.

 

보수, 진보좌파의 역사관은 똑같습니다. 실제를 외면하고 있지도 않은 허구로 국가정체성을 우기고 있죠. 남한은 미국없이 설명할수 없고 이해할수 없습니다.

 

미국의 필요성에 의해 세워진 한국을 보수, 진보좌파 제각각 자기들이 세웠다, 자기들이 정권정통성을 가진다며 국민들을 상대로 정치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국민들이 선거투표로 심판을 해도 정치사기에 놀아날뿐 나라가 개판이 되는 것이죠. 박정희는 미국의 필요성에 편승했지만 경제개발은 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국민들이 박정희를 평가하는 것이지 보수, 일제근대화 이런 것과는 무관합니다. 한국의 태생과 생산적 정치를 알아보는 것일 뿐이죠.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좌파까지 친미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정희나 노무현이나 친미라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죠. 진보좌파가 솔직하지 못한 것이죠.

 

그태생이 냉전패권에 의한 것이라 한국의 모순은 미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야 모두 친미세력이라 어느쪽이 집권해도 모순은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치개혁의 첫걸음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의미를 인정하는 것 뿐입니다. 그출발선에서 친미를 하든 반미를 하든 실제적인 변화가 있겠지요.

 

반미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한국의 대미예속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집권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보수, 진보좌파가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허무맹랑하게 자유민주주의니 정의니 떠들면서 국민들을 갈라 이간질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국민이 다알고 있는 현실을 혓바닥으로 가려서야 쓰겠습니까?

 

국민이 왜 멍청합니까? 미국의 영향력하에 있는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수백만의 희생으로 학습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에 시큰둥한 겁니다.

 

어두운 역사를 기회주의로 살아남은 제도권 정치세력들이 국민 위에서 역사를 언급할 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양심이 있고 상식이 있다면 자중할 일입니다.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해 어린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 이 한심한 정쟁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현정치세력은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국회가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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