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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경제복지

언덕

 

별처럼 가로등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아래 좌우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솔길이 보였다. 듬성듬성 나무를 수놓은 작은 언덕이 그렇게 한눈에 들어왔다.

 

오솔길이 끝나는 언덕위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그너머에 그들의 집이 있다. 햇볕이 들지않는 반지하 였다. 두손을 가지런히 깍지끼고 언덕 밑 버스종점을 본다.

 

금호동 비탈길에 세들어 살던 그들이 이곳으로 온후 다섯번째 맞이하는 겨울이었다. 그들을 내보낸 것 같은 아파트가 언덕 맞은편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

 

못지않게 밝은 미소로 버스에서 내린 그가 손을 흔들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녀가 두손을 마주 흔든다. 하루를 마감하는 그들의 반복되는 재회다.

 

이제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면 하루가 마감된다. 그곳은 어둡다. 고요하다. 몸이 약해 숨소리 조차 조심스러운 그녀처럼 창백하고 말이없다.

 

계단을 올라 그를 맞이하는 것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숨이 가쁘고 손끝이 저렸다. 그의 팔을 두손으로 잡으며 몸을 기댔다. 그래도 발걸음이 떨렸다.

 

밤새 식은땀을 흘린 그녀는 일어날 기력이 없었다. 그러나 아픈기색을 감추었다. 해마다 전세금 올려주는데 지친 그들이 아파트를 사는 날이기 때문이다.

 

여느날 처럼 출근을 한 그에게 이웃 아주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점심을 대충 때우고 짬을내 계약서를 쓰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녀가 의식이 없다는 전화였다.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택시에 올라탄 그가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말하며 내일 계약하자고 했지만 이미 도착한 집주인이 문제였다.

 

다른 매수자가 많으니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었다. 통화중 이웃 아주머니의 전화가 왔다. 구급차를 불러 근처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다는 전화였다.

 

도착해 보니 핏기없는 그녀의 가녀린 손이 눈에 들어왔다. 꼭 잡았다. 맥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 그녀가 깨어났다.

 

병실에 켜진 바보상자는 여전히 전월세난을 떠들고 있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가격상승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가들의 전망도 빠지지 않았다.

 

보름을 병원에서 지낸후 퇴원을 했다.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들을 반지하 단칸방이 따듯하게 맞았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그사이 호가가 올라가 있었다. 서운하지 않았다. 다시 기운을 차린 그녀가 언덕 마중을 나왔다. 그런 일상의 소중함을 병원생활이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2월이 가고 있었다. 늘 같지않은 시간이었다. 그녀의 걸음이 조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3월이 다가올 무렵 언덕 중간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의 팔에 의지하지 않고 가로등 불빛을 걸어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미소를 머금던 그가 뒤를 돌아 보았다. 아파트가 전보다 어두워 보였다.

 

회색이 물러갈 차비를 하는 3월이 왔다. 바보상자가 말을 바꾸고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잃어버린 20년을 말하고 있었다.

 

꽃샘눈이 내려 소담하게 쌓였다. 마지막 눈이었다. 그녀가 언덕 아래에 서있었다. 그옆에 아기만한 눈사람이 보였다. 그녀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팔장을 끼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낳을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약해서 위험하다는 진단에 미역국 조차 피하던 그들이었다.

 

"기운이 느껴져... 손끝도 저리지 않고, 오늘은 세번이나 오솔길을 걸었는 걸! 여름이 되면 뛸수도 있을거 같아..."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담겼다.

 

해가 남아있는 언덕에 가로등이 켜졌다. 하얀 달도 떠 있었다. 눈덮인 언덕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아파트가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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