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권통치를 꿈꾸던 정도전은 중앙집권을 완성하기 위해 사병혁파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의 기습에 패해 꿈을 이루지 못한다.
정도전은 왜 졌을까? 책상물림이었기 때문이다. 대군을 통솔하는 야전지휘 경험이 있었다면 보다 정교한 군개혁 수순으로 이방원을 넘어설수 있었을 텐데...
정도전은 사헌부(검찰)를 동원한 정치력 우위를 점했지만 군의 정보첩보(기무사) 운용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웠을 것이라 추정된다.
기습을 당했다는 것은 왕자들이 거느린 사병의 정보첩보 감시획득에 실패했다는 증거다. 병법까지 두루 섭렵했지만 딱하나 현장경험이 없었던게 정도전이다.
검찰인 사헌부와 기무사인 군의 정보조직 특성은 다를수 밖에 없다. 내부정보를 감시하는 검찰은 적진에 침투해 외부첩보를 획득하는 군의 상대가 될수 없다.
군외부첩보의 기본은 잠입과 은밀성이다. 사헌부는 대놓고 움직이거나 감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중삼중의 방어첩보망을 펼치면 사헌부를 역감시할수있다.
조선판 기무사 창설을 제안하고 사병차출을 요구하는 것이 군개혁의 첫단추 였어야 했다. 정보특성상 자기사람을 심으려 자발적인 협조가 있었을 것이다.
모든 군벌의 정보첩보 촉수가 한데 모이면 알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중 야심이 큰데 세력이 덜한 왕자의 사병들을 요직에 올려 다툼만 관찰해도 손바닥이다.
중앙군의 정보첩보 조직만 장악하면 곧 패권이 수중에 들어오기 때문에 별들의 싸움이 시작되고 모든 세력의 정보첩보망이 수면위로 드러나 무장해제 당한다.
속속들이 파악한 정보첩보 조직망에 침투해 교란과 역정보 및 이간계를 사용했다면 정도전은 꿈을 이룰수 있었을 것이다. 일의 순서에 따라 역사가 바뀌는 것이다.
이성계 군사집단의 기무사 또는 첩보대 역할을 했을 인적자원이 이방원의 수중에 있었을 것인데 이것을 와해시키기도 전에 사병해체 공격을 하다 실패한 셈이다.
검찰에 해당하는 사헌부와 경찰에 해당하는 의금부(?)를 동원한 정도전의 정치는 전술차원에 머물렀다. 그위에서 내려다 보던 이방원의 군정보첩보 전략에 진것이다.
국내권력과 세계패권의 기초중 기초는 정보첩보다. 이것을 가장 잘알고 제대로 운용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미국의 정보첩보 하부에 있는 나라다.
즉, 손바닥 위에 있다는 말이다. 한국은 미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는 나라다. 따라서 민주적 개혁과 혁명은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게 된다.
한국의 처지와 정보첩보의 위력을 함께 감안해 볼 필요가 있다. 동학과 5.18을 역사의 동력으로 생각하는 진보좌파의 무지함을 경계해야 실질을 세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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