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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시/전략전술

항모 사라지다 - 01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러해 보일뿐 아직도 각국의 물밑 다툼은 치열했다. 평화협정 문구를 놓고 저마다 유리한 해석으로 이익을 다투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양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제국의 해군력에 마땅한 제약을 가하지 못한탓에 바다영토는 아직도 힘에의해 그어지고 있었다.

 

국제규약이 정한 영역은 의미가 없었다. 거기에 자원이 있고 전략적 가치가 높으면 힘으로 차지하는 것이 바다의 법칙이었기 때문이다. 육지의 평화가 바다를 강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힘의 중심에 제국이 자랑하는 항공모함전단이 있었다. 한때 육지를 호령했던 공군력의 막강함을 바다에 띄우고 있는 주역이다.

 

우국에도 해군이 있었다. 몇대의 구축함, 간신히 두자리 숫자를 넘긴 잠수함이 그런대로 내세울 수 있는 전부였다. 이것으로 항모전단을 앞세운 제국을 상대해 바다영토를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데 제국의 항모전단을 구경만 하고있던 우국해군에 일대 격변이 싹트고 있었다.

 

항모전단의 위용에 감탄해 마지않던 우국의 해군진영에서 작은 다툼이 벌어졌다. 소년병들 대부분이 항모불패론을 주장하자 가장 나이어린 소년병 하나가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저건 덩치만 컸지 전술적인 방어력은 빵점짜리야... 나라면 잠수함 한척으로 제국의 항모를 나포해 버릴텐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간호장교가 미소를 지으며 꼬마 소년병을 지원하고 나섰다. "저렇게 커다란 항공모함을 병원선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우리 간호지원단에 있는 소녀병사들이 좁디좁은 방에서 부댓기지 않아도 되고... 지진과 해일같은 천재지변이 발생한 곳에 언제든지 달려갈수 있을 테니까..."

 

딴에는 고군분투하고 있는 어린아이가 안스러워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세계해군사를 뒤흔드는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무뚝뚝한 두 형들과 달리 여자 앞에서 더 활달해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소년병은 간호장교의 어여쁜 미소에 화답하듯 단호하게 선언을 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저 항공모함을 가져다 드릴께요." 그 어떤 사내도 보여주지 못했던 호쾌한 모습에 즐거워진 간호장교는 활짝 웃으며 선물을 받아 들였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꼬마 병사님!" 간호지원단 곳곳에서 귀엽다, 매력이 있다는 소근거림이 들려왔다.

 

이것이 소년병들의 심장을 자극했다. 평소 꼬마병사와 친하게 지냈던 일단의 소년병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우리가 저 항공모함을 가져오겠습니다!" 농담으로 받아들인 일에 소년병들이 사뭇 진지하게 나오자 간호장교가 정색을 했다. "아서요. 저건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철옹성입니다. 여러분의 패기만 선물로 받을께요."

 

그렇게 일단락 되고 여러달이 흘렀다. 그동안 유독 잠수함에만 관심을 보이며 시키지도 않은 정비와 허드렛일을 마다않던 소년병들은 기회가 될때마다 자원해 운항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원양작전에 참가했던 잠수함이 장기정비에 들어가며 소속된 소년병들이 재배치 되었다.

 

이들도 중립동기들이 집중 육성하고 있는 미래자원 이었다. 스무살에 근접한 경력 수년차의 숙련된 항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소년병 막사에 돌아온 것이었다. 열다섯을 갓 넘긴 어린 병사들에게 이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자신들이 알아야할 그리고 걸어가야 할 과정을 먼저 통과한 선배였기 때문이다.

 

돌아온 이들에게 꼬마 병사와 그동료들의 행동이 이상해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들도 적극적이었었지만 꼬마동료들 처럼 모든 주의력과 시간을 잠수함 항해에 쏟아붇지는 않았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어느날 부품정비에 애를먹는 소년을 도와주며 이야기 나눌 기회를 얻게 되었다.

 

"너희들은 잠수함에 푹 빠져있구나?" 한가지 기술을 더 알게된 소년은 기쁜 표정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예, 우리들은 목표가 있거든요." 목표가 있다는 말에 더욱 궁금해진 선배 소년병이 재차 물었다. "무슨 목표가 있길래 그렇게 열심이지?"

 

"선배님만 알고 계세요. 이건 우리들만의 비밀이니까... 잠수함을 완전히 배우고 나면 우린 제국의 항공모함을 가지러 갈겁니다." 당차지만 허무맹랑한 말에 웃음부터 터져나온 선배 소년병은 간신히 호홉을 가다듬고 말했다. "무슨수로 웬만한 나라 하나쯤 초토화 시킬수 있는 막강한 항공모함을 나포한다는 것이지?"

 

"배의 최대 약점은 밑바닥 입니다. 여기를 차지하면 물리치기 힘든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가 크면 클수록 밑바닥 약점은 커지지요. 항공모함은 가장 커다란 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가장 크게 가지고 있는 것이죠. 여기를 잠수함이 파고드는데 성공하면 항모는 포로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위해 동료들을 부르러 온 꼬마병사가 대신 대답을 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던 항공모함의 취약점을 지적한 것이 아주 앳된 꼬마라는 사실에 놀란 선배 소년병은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무언가가 항공모함을 향해 등떠미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네 이름은 무엇이지?" 기억해 두어야할 소년이라는 생각에 선뜻 이름부터 물어 보았다. "전문 입니다. 글월문자를 써요. 군사분야를 좋아하는 두 형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던 아버지께서 저만은 평범한 공부를 하기 바라셔서 그렇게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형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지만 꼬마는 묵묵부답이었다. "이름을 들어도 전혀 모르실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평범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버지 뿐만이 아니었다. 두 형도 전문이 군에 입대하는 것을 알았었다면 군복을 벗으면서라도 말렸을 것이다.

 

그래서 전략과 전술이 자신의 형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바다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터라 형들의 인맥이 감지하지 못하는 해군에 도둑질 하듯 입대했던 전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침묵이 선배 소년병에게는 더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며칠동안 숙고한 선배 소년병은 동료들에게 꼬마병사들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복무경력이 길다고는 하지만 아직 혈기넘치는 소년들이었다. 이들의 모험심과 호승심에 불을 지르고도 남을 꼬마 병사들의 행동은 쉽게 스며들어 어느새 실제행동이 가능한 수준까지 전파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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