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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시/전략전술

정치 - 그 최후의 전장

8. 물의 전략 흐름의 전술

 

물처럼 순응하는 것은 없다.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 몸을 맡기는 게 물이다. 이렇게 보면 수동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의 시각일 뿐이다. 물은 여건과 상황에 완전히 동화되어 해법을 모색한다. 가장 적극적인 대처방법이다.

 

칼이 다가오면 그날에 살을 맞대고 움직이는 것... 대상에 더없이 가까이 다가가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맞서는 것... 이것이 궁극을 보여주는 물의 적극성이다. 나아가 상대가 수용하면 그대로 스며들어 작용하다 빠져나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상황과 여건으로 부터 떨어져 나가며 푸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밀착해 그것과 함께 움직이며 흐름을 바꾸려 하는 것이 물인 것이다. 물은 이치에 역행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흐르고 흘러가다 뜨거워 지면 중력이 높은 지표면에서 낮은 하늘로 윤회하며 흐른다. 이것이 물의 전략이다.

 

군 주도의 경제재건이 일단락된 후 최적의 병력규모를 유지한 우국은 전쟁을 통해 소중함을 절감한 일상을 만끽하고 있었다. 사관학교 졸업후 처음으로 휴가를 맞추어 모두 모인 중립 동기들은 그림자부대의 실체를 알고있는 선에서 소년병들을 초대했다.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담당자나 병과 이외의 사람에게 노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년병들이 오두막사에 도착하자 이미 혀가 꼬부라진 전략처장이 한손을 치켜들며 환영인사를 해왔다. 야전주가 담겨져 있는 유리병은 오늘도 어김없이 전략처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전략전술은 물론이고 소년기를 벗어난 앳된 장교들이 일제히 합석해 술잔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농담도 오고가고 친분있는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군인들의 술자리가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어느새 주제는 지난 전쟁으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중립동기들이 어린 장교들을 초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국에게 놓여진 상황과 여건을 십분 활용해 종전을 끌어냈지만 여의치 않았을 경우 어떻게 해야 했었겠느냐는 것이 어린 장교들에게 던진 중립동기들의 질문이었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이기는 싸움을 할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공통된 주장이었다.

 

그러자 부대장이 물었다. "싸움에는 이기는 싸움, 끝내기 위한 싸움이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싸움의 주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지난 전쟁에서 우국이 주체인가? 아니면 제국이 주체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누가 주체인가?"

 

이질문에 다양한 대답이 이어졌다. 기업과 군의 싸움, 제국기업과 약소국간의 싸움, 각 국가 내부에서도 정치기업과 군의 싸움이 있었으니 이들이 주체가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립동기들은 원하는 답이 들어있지 않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중립 동기중 한사람이 입을 열었다. "누가 싸우는 것인가?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다. 이것을 비껴가면 목적이 전부가 되어 버리지... 내가 싸우는 가? 제삼자가 싸우는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모두가 싸우는 것인가? 지난 전쟁의 주체는 과연 무엇일까?"

 

하지만 선뜻 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까지 야전주를 비우고 있었던 전략처장이 비스듬 했던 자세를 고쳐잡았다. "평화협상의 물꼬를 튼 것은 우리 우국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 한 것은 강국이었지... 단 한번의 충돌로 제국이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강국이 말이야..."

 

그랬다. 중립동기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분석하고 있었던 나라는 강국이었다. 이미 제국을 넘어서는 전력을 갖추고 있을게 분명한 강국이 어떤 이유에서 인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제국의 공격 움직임이 보일때만 조금씩 드러내며 억지력에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중립동기들이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수수께끼였었다. 마음만 먹으면 제국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강국이었다. 물론, 강국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답이 되지 않는다. 중립동기들이 의문풀이에 매달리고 있을때 또한번 의외의 소식이 들어왔다.

 

주변에 있는 약소국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힘들여 개발한 생산기술 까지 넘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강국의 행보에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중립 동기들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강국이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은 주인사상 이었다. 나의 주인은 나요, 나라의 주인도 나요, 세상의 주인이 나라는 사상이다. 내 몸을 내가 아끼고 가장 커다란 내집인 나라를 중시하며 그 모든 터전인 세상을 내것으로 여긴다는 것이 주인사상의 골자였다.

 

이 주인사상에 강국의 행동을 대입하자 비로서 의문이 풀려갔다. 세상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할 경우 강국도 자기의 것이고 제국의 사람들과 자산도 남의 것이 아니게 된다. 이기는 전쟁으로 치닫는다면 제국의 모든것을 초토화 시켜야 싸움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이 강국의 판단이었다.

 

이것은 세상의 주인이 되자는 생각으로 치룰수 있는 전쟁형태가 아니었다. 제국이 일구어 놓은 물질시설은 내부 뿐만이 아니라 외부국가 사람들의 피와 땀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파괴해 버릴경우 이미 쏟아부은 피와 땀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반인륜이 되는 것이다.

 

중립동기들이 어린 장교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었다. 전쟁을 끝낸 결정력은 강국의 주인사상이었다. 제국과 우국을 포함한 다른 모든 나라들이 종전을 희망해도 강국이 비토를 놓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했던 평화협상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번 평화협상이 체결되지 않았을 경우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지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졌다. 제국등이 전방위적 종전을 합의하지 못했을 경우 강국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주인으로서의 전쟁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이러한 설명이 어린 장교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단, 두번의 대승으로 제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들도 능히 대적할 수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어린 장교들의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우국에서 머무는 존재로서 전쟁에 임하고 있던데 반해 강국은 제국의 인명과 산업시설까지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중립 동기들이 완공된 미사일 기지로 엄포만 놓을뿐 제국의 산업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강국과 마찬가지로 방어위주로 대응 했고 공격을 해도 군사시설에 한정했었다. 제국이 다른 나라들의 농토나 산업시설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던 것과 대비되는 움직임이었다.

 

약소국의 식량과 산업시설을 제거해 제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강국과 우국의 한정적 대응에 직면한 후 두나라에 대해서 만큼은 같은 선을 지키고 있었다. 제국의 이러한 움직임도 강하면 피하고 약하면 쓸어버리는 물의 속성이기는 했다.

 

어쩌면 주인의로서의 공격준비가 이미 끝났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해서 무리없이 가자는 것이 강국의 생각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중립동기들의 분석이었다. 이렇게 국제정세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자 어린 장교들이 비로서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상황과 여건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수용하고 끌어안아 자기것으로 만드는 것이 주인의식이라는 것이다. 적개념에 사로잡혀 제국을 분리해 놓으면 물처럼 하나되는 전략이 나올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전술이 눈빛을 반짝이며 질문을 했다.

 

"주인으로서의 공격은 어떤 형태입니까?" 이 질문이 나오자 그때까지 아니, 예전부터 지금까지 온화한 표정으로 침묵만을 지키던 중립동기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화답했다. "부득이하게 칼을 뽑는다면 상대의 혈관을 갈라버리는 철저함이 있어야 주인다운 싸움이지... 이것이 늘 주인인 물의 전술이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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