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온누리에 깃든 평화
그렇게 평화가 찾아왔다. 오랜 전쟁끝에 상처를 동여매기 시작한 것이다. 종전까지 이끌어낸 중립동기들의 정치적 위상은 대단했다. 수도를 떠나 각자의 위치로 되돌아 간 후에도 이들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군이 물러나며 정치를 되돌려 주었지만 예전처럼 농단을 할 수 없는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이익이 크지 않자 정치에 대한 과도한 집중이 해소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정치판이 어지러워 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현재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최상의 대처였다. 항상 깨어 있어야 실족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이다.
한시적 조치로 연령제한을 폐지한 중립 동기들은 두각을 나타낸 소년병들을 사관학교에 보냈다. 전후 복구와 경제재건에 몰두한 2년이 손쌀같이 지나갔다. 전시 군복무 경력을 인정받은 소년병들은 2년을 단축해서 졸업할 수 있었다. 비록 속성이었지만 이들의 실력은 역대 졸업생들이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었다.
이들의 임관식은 아주 특별했다. 사관학교 졸업에 따른 기본계급에서 능력과 전공에 따라 파격적인 승급이 이루어졌다. 지휘관으로 집중 육성된 전략은 중앙전선에서 세운 전공에 따라 중령으로, 전술은 소령의 계급장이 수여 되었다. 다른 소년병들도 마찬가지 였다.
정치권과 군 일부의 반발을 의식한 중립 동기들은 소년병들이 세운 전공을 사실 그대로 발표해 버렸다. 이 소식을 제국에서 접한 야전사자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십대 초반의 출중한 장교들을 대거 배출한 우국의 유연성을 관습성 권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제국이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소년병들은 그냥 시간이 흘러도 이십대에 장성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전쟁이 도진다면 단 한번의 전공으로 별이될 수 있는 위치에 놓여진 것이었다. 이러한 우국의 조치는 전쟁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는 제국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작용했다. 야전사자들이 씁쓸해 할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였지만 우국의 경제는 아직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어쩔수 없이 전시와 똑같은 규모를 유지하면서 군이 경제복구에 앞장서게 되었다. 소년병들도 그대로 군복무를 이어가게 된 것이었다.
소년병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신설한 중립 동기들은 그 지휘를 갓 임관한 어린장교들에게 일임했다. 공병장교가 주축이 되어 전후복구에 나선 소년부대는 폐허와 싸우며 농토와 산업시설을 재건해 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성과를 보이자 우국은 14세 이상의 소년들을 모두 징집했다.
가계가 삼시세끼를 벌어들이기 어려운 때 이루어진 이러한 조치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묘수였다. 가계는 입을 덜수 있어 부담이 줄었고 국가는 경제재건 속도를 가속화 시킬 수 있었다. 군 수뇌부는 어릴수록 덜 위험하고 덜 고된 역할을 주어 부모들이 걱정하지 않고 맡길만큼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재건이 본궤도에 오르자 민간부문에서의 인적자원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맞추어 병력수를 줄여가며 민간쪽으로 인적자원을 투입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 가자 가계경제가 정상화 되는 집의 아이들 부터 귀가시키기 시작했다.
우국의 국토가 파괴된 것은 전쟁초기 제국의 공군력을 막아내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미사일 기지가 완성된 이후에야 제국의 공습이 중단되었던 것이다. 그 피해를 복구하는 데 이렇듯 기나긴 시간과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이 소모되어 버린 것이었다. 전쟁과 그후 모두 녹록치 않은 댓가를 요구했다.
원활하게 돌아가는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체 보다는 고쳐서 유지해 나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만약 권력이 정치기업의 영향력하에 있었으면 이렇게 빠른 복구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고쳐서 유지하는 것이 더 좋다는 판단에는 이러한 방해가 미약했을 때라는 구분이 필요했다.
가장 빠르게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나라는 강국이었다. 전쟁 초반에 제국의 공격을 멈추게 만들어 더이상 피해를 입지 않았었고 전시경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생산물을 군사물자에서 민간상품으로 전환한 조치가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 어떻게 된다고 다른 나라들이 따라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아니었다. 전시경제란 국가 내부의 타협이 이루어 지거나 정반대 이익을 가진 기업들과 내전에 가까운 분열을 겪어가며 국가해체 없이 통과해야만 가능한 경제방식 이었다.
이것을 잘 알고있는 중립 동기들은 완전히 휘어잡은 권력을 스스로 물리고 군 본연의 위치에서 우국에게 가장 알맞은 경제해법을 모색해 온 것이었다. 기업들의 이익을 정도껏 보전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땅짚고 헤엄치기식의 무절제한 이윤추구를 제약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면 우국도 어쩔수 없이 전시경제에 편승해 경제해법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업들이 권력에 끝까지 집착하면서 과도한 이익에 목숨을 걸었었다면 병력규모를 확대하며 경제를 살리는 해법을 적용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른 나라들의 경제도 본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더불어 국가간의 교역도 재개되었다. 강국같은 전시경제의 국가가 상품을 만들어 낼 경우 기업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은 비용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것 때문에 양체제 사이의 무제한적 교역이 발생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잘 알고있는 강국은 스스로 자급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적당량만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강국이 주력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다른 나라의 기업들은 모두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국이 이렇게 나오자 다른나라의 기업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되도록 많이 생산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려고 했던 구습에서 벗어나 적당한 생산으로 적정가격을 유지하는 한편 발생한 이익을 부동산등 엉뚱한 곳에 퍼부어 거품을 양산하던 자해형 경쟁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적정경쟁을 벗어나 과열될 경우 강국의 전시경제 즉, 국가기업 체제가 가만히 있을리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국가가 기업으로 구성된 경쟁력은 비용싸움에 돌입했을 때 무적에 가까운 괴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날고 긴다는 기업도 국가기업을 만나면 하루아침에 도산해 버릴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평화가 왔다. 온누리에 깃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 평화로운 곳 어느 건너편에는 늘 전쟁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병가지 상사일 뿐이다. 늘 있는 전쟁을 멈추게 만들어 그 상태를 얼마나 길게 유지할 수있는 가 하는 것이 사람이 가져야할 올바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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