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전쟁의 목적
지휘부 막사에 도착한 전략은 양팔을 벌려 가장 커다란 나무의 둘레를 재보았다. 네아름을 넘기며 하늘로 치솟은 나무는 수백년의 수령을 활짝펴고 있었다. 그 가지위에 얹어놓은 잎들이 지붕이되어 아래세상의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이런 나무들이 제국의 위성을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한손을 나무에 대고 생각에 잠겨있던 전략은 정적을 깨는 발자욱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밤새워 술을 마셨을 세사람이 말쑥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나오자 역시 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림단장이 가면서 배를 채우자며 손에 든 봉지중 하나를 전략에게 건넸다.
오솔길을 돌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잔디로 지붕을 덮어 위장한 반지하 창고였다. "부대장이 지원부대의 하산을 하루 연기한 사이 우리가 수거한 저격용 소총들이야... 상태가 양호한게 천여정 되더군... 파손된 것들을 분해하는 중인데 수리용 부품으로 활용할 생각이네..."
건과봉투를 뒷춤에 넣은 그림단장이 분류작업에 정신없는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독려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건과를 입에 털어넣은 전략도 봉투를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작업 진척도를 확인한 그림단장은 전략이 눈을 붙였던 소년병 막사로 그들을 안내했다.
"한참 뛰어놀 아이들이 전쟁터로 끌려 나온다는 게... " 꿈나라에서 뛰어놀며 잠꼬대를 주고받는 소년병 막사를 뒤로하고 돌아나간 네사람은 산정상 입구에서 발을 멈추었다. 일년에 한번씩 즐기던 여유로운 휴가를 짧게 마친 전략처장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알고도 남는다는 미소로 악수를 마친 그림단장이 전략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떻 저격을 할수 있는지 궁금해 질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손이었다. 그런 반응에 익숙해져 있는 그림단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매미처럼 매달려 있는 전략의 손을 놓고 고목나무 같은 팔을 거두어 뒷짐을 지었다.
인사를 마친 부대장이 앞장서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직선 장군의 권총을 발견한 곳에 이르렀을 때 작전처장이 전략의 어깨를 쳤다. "아직도 어두운데? 나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건가?" 동생을 걱정하던 표정이 가시지 않은 전략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농담을 섞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세분은 왜 전쟁을 하고 계십니까?" 짤막했지만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저 나무들이 가꾸어 온 수백년도 하루면 사라지게 만드는 게 전쟁입니다. 전쟁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자신들이 오래전에 통과했던 길목에 전략의 생각이 도착한 것이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지..." 이런 대답을 자신있게 토해내기 위해 동기들과 한눈한번 팔지않고 달려온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전쟁에도 여러가지 목적이 있다. 이기기 위한 전쟁, 전쟁을 위한 전쟁, 빼앗거나 지키기 위한 전쟁... 하지만 이런 전쟁은 늘 있었던 것이었다. 역사의 쳇바퀴에 불과한 것이다.
전쟁은 역사의 통로였다. 이 불가피한 과정을 얼마나 빨리 지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인류가 풀어야 하는 숙명의 매듭이었다. 축적된 분쟁의 기운을 해소하는 과정이 전쟁인 것이다. 끝내기 위해 시작되는 것이 본질인 셈이다. 따라서 가장 정확하고 완전한 전쟁의 목적은 종전... 감상적 표현으로 평화였다.
제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전쟁도 국가간의 이익이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국익은 껍데기일 뿐이다. 이익의 주체는 기업이었고 그것을 나누는 실질은 일단의 정치세력 이었다. 이익집단... 이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의 불씨였다.
문제는 이익집단이 국가결성의 바로 전단계라는 것이다. 이익으로 뭉친 집단이 가장 커다란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주고받는 계약이 국가였다. 전쟁의 불씨를 완전히 제거해 영원한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감상은 국가를 해체해 버리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해관계를 조율할 장치만 사라질 뿐이었다.
씨족간의 분쟁을 넘어 국가로 발전했 듯 나라 사이의 이해관계를 해소할 보다 커다란 계약... 그 질서가 만들어 질 때까지 국가탄생 과정보다 더 지난한 전쟁들을 통과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전쟁을 빨리 끝낼수 있는 해소능력이 마침표를 찍어왔다.
이긴다고 전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분쟁이 전쟁으로 번지는 도화선... 그 발화력까지 제거하지 않으면 희생을 치루었던 전쟁이 무의미해 지고 만다. 그래서 토사구팽이 있었다. 전쟁으로 형성된 세력의 관성이 멈추지 않으면 전쟁을 위한 전쟁으로 치닫곤 했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해 축적했던 내부의 힘과 마지막 일전을 치루어야 전쟁이 끝나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승리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싸움을 끝내려는 자에게는 전쟁 그 자체가 적이다. 토사구팽의 준내전 과정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하나로 보는 것... 그 시작과 끝을 다 보아야 어디가 맥인지 파악할 수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이해관계를 항구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실시간으로 조절해 절충가능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제국을 정점으로 형성된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 되어야 작전처장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군인이 치루는 전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국제외교와 다른 나라들의 경제상황등 모든 것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얻어낼 수 있는 답이었다.
자신은 물론 동기들도 제국의 야전사자들 특히, 직선장군의 강직하고 선굵은 무용담에 매료되어 군에 입문했다. 그리고 동아리를 만들어 전술전략에 대한 토론을 거듭했다. 제국의 힘은 국가 전체의 중심을 잡고 있는 야전사자들 이었다. 이들의 강점을 분석하다 보니 우국의 단점이 보였다.
결국 우국을 속속들이 파헤치며 단점에서 다시 출발한 그들은 제국을 완전히 분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렇게 얻어놓은 자료들을 맞비교 하자 두 나라의 공통점, 연결된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전쟁의 끈이 놓여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전쟁의 원인은 제국에도 있었고 우국에도 있었다. 아니 이 전쟁에 휘말려 있는 모든 나라에게 있었다. 전쟁은 국가를 넘어 모든 나라를 한울타리 안에 가둘수 있는 한차원 높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제어할 수 있는 힘 또한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는 전방위적인 것이어야 했다.
작전처장과 동기들이 내린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우국을 넘어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전쟁을 다스려 보겠다는 전대미문의 혈기였다. 이제 겨우 우국에 두발을 디딘 것 뿐이었지만 시작이 반이었다. 제국의 야전사자들을 넘어선 것이다.
제국의 중심을 잡고 있기는 했지만 야전사자들은 전쟁에서 이기려고만 하고 있었다. 전쟁의 관성에 사로잡혀 끌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는 정치권과 완전한 거리를 둘수 없는 제약을 장치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달랐다. 제대로 선을 그으면서 오늘을 맞이한 것이다.
작전처장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부대장의 환한 미소가 보증하고 나섰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겨 이름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흔히 그러지...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다고...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전쟁에서 이기고 역사에서 진다고... 자그마한 전쟁에 집착해 역사의 패자가 될 생각이 없다."
전략은 체증이 가신 환한 얼굴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 목적의 전쟁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었다. 동생과 그또래 아이들 걱정으로 어쩔수 없이 생각을 드러내게 되었지만 사람의 목숨에 손을 댄 것만은 분명했기에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던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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