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림자 저격단
후줄근 하지만 숲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옷에 더부룩한 수염, 검게 그을린 얼굴이라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사람들이 서있는 곳에 두발을 디딘 작전처장과 부대장은 스스럼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들의 손을 잡은 털복숭이는 오랫만에 만난 반가움을 호탕한 웃음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서 오게... 자네들이 이곳으로 올라온다는 보고를 받은지 한참이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네... 왜 이렇게 늦었는가?" 웃음의 주인공이 길 안내를 하면서 물었다. "오다가 직선장군의 권총을 발견했네... 그것을 확인하느라 좀 늦었어..." 부대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뒤돌아선 털복숭이는 어울리지 않게 깜짝 놀란 커다란 눈으로 되물었다. "직선 장군의 유품을 발견했단 말인가?" 작전처장이 건네준 권총을 자세히 들여다 본 털복숭이가 나즈막히 중얼러렸다. "확실하군... 적장이기는 하지만 군에 입문하게 만든 우리의 우상이었는데..."
"여기는 볼수록 헛갈리는 곳이야... 한두번 와본 것도 아닌데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하겠네..." 작전처장이 두리번 거리며 중얼거렸다. "우리도 한달만 안오면 애를 먹는 다네... 온갖 동물들이 돌아다니고 하루가 다르게 수풀이 자라는 곳이지... 빛이 잘 들어와서 그런것 같아..."
털복숭이의 말을 듣고 둘러보니 나무 간격이 적당해 햇빛이 통과할 수 있는 틈새가 많았다. 잠시후 그들이 도착한 곳엔 통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오두막 집이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것 처럼 보였지만 막상 실내로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돈된 아늑한 공간이 나왔다.
"야... 그대로네... 술 많은 것도 그렇고..." 호롱불이 반사되는 술병들을 만지작 거리는 작전처장의 모습은 냉철했던 첫인상과 정말 다른 것이었다. 온갖 산나물과 열매가 가득 담긴 술병들이 빼곡한 벽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동네 아저씨였다.
흡족한 표정으로 뒤돌아선 작전처장은 어느새 따른 술잔을 든채 이곳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사일 기지를 중심으로 한 중앙전선의 공식부대는 지원대가 마지막 이었다. 동시에 창설되었지만 철저하게 숨겨진 부대의 주둔지가 바로 여기였다.
이곳의 존재를 알고있는 것은 부대장 동기들 뿐이었다. 공식적인 명칭도 없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그림자 부대였다. 서류상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 부대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름이었다. 이 부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털복숭이였다. 동기들은 그를 그림단장이라고 불렀다.
다만, 보급물자 확보를 위해 저격단의 단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후방에 있는 저격 훈련대와 전선 곳곳에 파견나가 있는 저격수들을 총괄지휘하는 직책이었다. 아주 가끔 저격 훈련대를 시찰하는 것을 빼고 일년의 대부분을 전방과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부대장 동기들이 미사일 기지를 강행할 때 세웠던 계획에는 지원단과 저격단이 하나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야만 제국이 어떤 유형의 공격을 시도하더라도 물리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 한사람만 도심으로 진입해도 정치인들이 벌벌 떨수밖에 없는 대규모 저격단까지 추진하기에는 정치적인 부담이 너무 컸다.
결국 저격단은 비밀리에 시차를 두고 추진하기로 하고 소규모 지원단 까지만 정식으로 창설한 것이었다. 여러해에 걸쳐 커다란 부상을 당하거나 나이가 많아 신속한 기동이 어려운 저격수들의 동의를 구해 서류상 전사처리를 한후 비밀리에 이곳으로 배치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전사하거나 신체에 손상이 발생하지 않으면 어차피 전장에 있어야 하는 병사들에게 그림자 저격단의 복무조건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일부는 주저하기도 했지만 이곳이 국민속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가져다준 오랫만의 행복을 지키는 마지막보루 라는 책임을 받아들였다.
저격단장을 겸임한 그림단장은 이런 것을 감안해 웬만하면 가족이 없는 사람들로 우선해서 저격수를 선발했다. 선별한 병사들을 저격 훈련대에서 중간 탈락시킨 후 동기들의 부대로 보내 맞파견으로 어지러이 만들다가 전투가 발생한 지역으로 기록해 병력을 보충한 것이었다.
장시간에 걸쳐 노력한 결과 삼천명에 달하는 대규모 저격단을 갖추게 되었다. 식량과 물자들은 저격대에서 조금 덜어오고 동기들의 부대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더 보급받아 보내온 것으로 보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숲속에서 채집한 곡식과 열매, 나물등이 쌓여갔고 사냥도 한몫을 담당했다.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개체수를 조절하는 선에서 멧돼지등 짐승을 잡았다. 이것을 미사일 부대의 식량과 교환하기도 했다. 쉽게 구할수 없는 저격용 소총은 전투가 치열했던 곳에 정찰단 명목으로 들어가 확보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곳이 제국 저격수들의 자리인지 한눈에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
이렇게 노력해 온 결과 이제는 여러해 분량의 식량을 비축해 둘 정도였다. 그림단장이 권한 자리에 앉아 들여다 본 식탁위에는 전장에서 구경하기 힘든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이것이 그림자 저격단이 늘 만끽하고 있는 식단이라는 것이다. 다른 부대들이 알게 된다면 부러워 하지 않을수 없는 풍요였다.
이 오두막 외에도 빛이 잘 들지 않는 자리 곳곳에 막사를 지어놓은 그림자 저격단은 숙소를 중심으로 할당된 지역을 철벽같이 감시하고 있었다. 어느쪽으로 어떠한 침투가 있어도 사방에서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완벽한 방어망이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국의 위성이 항상 감시를 하고 있었지만 숲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들을 발견할 수 는 없었다. 탁 트인 곳은 야간에 이동을 했다. 삼천명에 이르는 저격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제국의 이번 공격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있었다고 해도 다른 형태의 공격이 이루어 졌을 것이다.
절반에 달하는 특수부대가 퇴각을 했는데 그 중 수백명만 살아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전략은 수수께끼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원부대의 소규모 병력으로는 도저히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의문이 이곳에 대한 작전처장의 설명으로 풀리는 순간이었다.
설명을 마친 작전처장이 술잔을 치켜들었다. "오랫만에 마음껏 마셔 보자고... 내일 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날 말릴 생각들은 마시게..." 그러면서 전략에게도 술을 권했다. 손사래를 친 전략은 눈이 휘둥그래 지도록 푸짐한 식탁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부딪친 잔을 한번에 털어넣은 세사람은 접시를 비우느라 바쁜 전략을 쳐다 보았다. "우리 그림자 저격단이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기는 했지만 절반에 가까운 특수부대가 지원대 영역에서 몰살했다는 게 납득이 되질 않아... 자네들 외에는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 이친구를 데려온 것을 보니 답이 여기에 있는 것 같군..."
그림단장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바쁘게 놀리던 젓가락을 멈춘 전략이 고개를 들었다. 물잔을 건네며 천천히 먹으라는 말을 건넨 부대장이 천천히 입을 열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전략처장은 자작을 하고 있었다. 술이 많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들어서자 마자 술병을 껴안으며 환호하던 그 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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