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즉발식 수류탄
그림자 저격단의 역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양대산맥 곳곳에서 자리를 잡아 눈 감고도 저격을 할 수 있을 만큼 닦고 또 닦은 실력을 발휘해 제국의 특수부대를 최대한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지원부대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이런때에 대비해 공사를 계속해 오고 있었지만 커다란 집단호 구덩이들만 파 놓았을 뿐이었다. 거기에 매설할 크레모아를 대량 요청했지만 생산량이 모자라다는 통보만 받았다. 그래도 계속 독촉을 하자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수류탄 이라면 얼마든지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방에서도 크레모아가 모자라 앞다투어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동기들을 통해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결국 그것이라도 챙겨 두자는 무기 담당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류탄이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당장 필요한 것은 크레모아 였다.
보안상 그림자 저격단을 제외한 작전도를 펼쳐놓고 고심을 하고 있던 부대장은 자기보다 더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전략에게 말을 걸었다. "대규모 특수부대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말을 꺼내놓고 나니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략의 나이어린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진지구축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면으로 막을수는 없을 겁니다. 적의 숫자가 많으면 아군 숫자를 늘리는 게 방법이지만 여기는 신속한 지원이 불가능한 곳이기도 하구요. 이럴땐 적의 힘을 이용하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힘을 주는 방향으로 끌어 당기면 승산이 있을 겁니다."
뜻밖에 술술 나오는 전략의 그럴듯한 대답에 놀란 부대장은 솔깃한 표정으로 한발 다가섰다. "적이 힘을 주는 방향으로 끌어당기다니... 백전을 치룬 최정예 특수부대를 상대로 그런 방법이 통할 수 있을까?" 일말의 기대를 거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가볼 곳이 있다며 앞장선 전략이 부대장과 도착한 곳은 수류탄이 가득 쌓여있는 무기창고였다. 시간 날때마다 모자라는 일손을 도와주던 전략이 오자 무기 담당관이 반갑게 맞이했다. "오늘은 부대장님도 함께 오셨군요." 재빨리 창고를 연 무기 담당관은 전략이 요청한 상자 앞으로 두사람을 안내했다.
"여기 있는 수류탄을 사용하면 제국 특수부대의 관성으로 그들 자신을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상자에 있는 것들을 지연신관 수류탄과 섞어 나중에 빼갈수 있는 위치에 놓아두면 됩니다. 그리고 산위에서 적당히 공격하면 저들의 힘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전략이 설명을 마치자 무기 담당관이 뒷춤에서 꺼내든 뭉치를 부대장에게 건넸다. 분해된 수류탄 신관 이었다. 안전핀을 빼자마자 딱하는 소리가 났다. "이건... 모양은 지연신관 같은데 충격식도 아니고 곧바로 터지는 신관이 다 있나?" 의외라는 표정으로 부대장이 중얼거렸다.
"예, 크레모아 때문에 걱정하고 계실때 저친구가 찾아왔었습니다. 자기가 그린 도면대로 수류탄을 만들면 크레모아 못지않은 폭탄덫을 설치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작업을 도와줄 때 제 친구가 군수업체에서 수류탄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고 자랑을 했었거든요." 무기 담당관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서 수류탄이라도 받아 놓자고 건의를 했던 것입니다. 그 직후 당일 휴가를 신청하고 친구를 만났습니다. 도면대로 생산이 가능한지, 그리고 전략이 부탁한 대로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물어봤죠. 자신이 모든 공정을 관리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하더군요."
상자 하나를 열어제낀 무기 담당관이 한걸음 비껴서며 말했다. "이게 바로 즉발식 수류탄 입니다. 달라는 것은 안주고 엉뚱한 것만 얼마든지 줄수 있다는 군수담당의 큰소리에 부아가 치밀어 이렇게 잔뜩 받아왔습니다." 사격장에서 성능을 확인한 세사람은 즉시 상황실로 돌아왔다.
즉발식 수류탄을 감안해 새로운 작전도를 그리며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 세사람은 새벽이 다 되서야 완성된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모든 병력을 동원해 집단호 일부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산아래 자락을 따라 양쪽을 넓은 폭으로 파내고 바닥에 촘촘하게 지뢰를 매설했다.
이 지뢰를 모두 제거해야 약간의 나무들이 듬성듬성 늘어져 있는 가파른 산비탈로 접근이 가능했다. 동원했던 중장비를 파괴해 버린 지원부대는 부대장의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의 특수부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림자 저격단에 잠시 들린 부대장은 지원부대로 올라오는 도로에 저격수를 집중 배치해 달라는 변경된 계획을 전했다. 단순했던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발전이었다. 다만,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국군이 이러한 장치에 무너진다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국의 특수부대가 안고있는 첫번째 심리적 부담은 촉박한 시간이었다. 전군의 파상공세에 이어 후속지원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우국군이 중앙전선 진입을 차단할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되도록 빨리 정상까지 점령해서 미사일 기지를 장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야 족쇄가 풀린 전투기를 투입할 수 있었다. 막강한 공군력이 가세하면 미사일 기지를 넘어 우국 전체를 삽시간에 점령해 버릴 수 있는 중요한 작전이었다. 제국이 특수부대를 모두 투입할 만큼 커다란 결과과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관성이었다.
이들을 맞이한 두번째 장치가 커다랗게 파놓은 엉성한 개인호 였다. 아랫 부분을 그냥 놓아두어 삼분의 일을 거져 점령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폭발물을 매설해 제국군이 가지고 온 수류탄을 소모하게 만드는 관성이 작동했다. 이때 우국군의 공격이 있었다면 갖 출발한 미약한 관성에 급제동이 걸려 버렸을 것이었다.
절반 이후 구덩이 부터는 지원부대가 방치한 수류탄을 사용해야 했다. 상당량이 정상작동하는 지연신관식 수류탄 이었기 때문에 우국의 것이라 주의해야 한다는 경계심을 완전히 제거해 주었다. 그래서 이후에 작동한 즉발식 수류탄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게 세번째 관성 이었다.
구덩이를 거의 다 점령해 갈 즈음에 즉발식이 뒤섞인 수류탄이 올려보내 졌고 돌격준비를 위해 전 병력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백병전에 가까운 전진에 필수적인 수류탄을 보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개인호 구덩이가 만들어낸 네번째 관성 이었다.
종착점 가까이에 있는 구덩이의 폭발물을 제거하기 위해 수류탄을 던지던 특수부대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안전핀을 뽑자마자 터졌고 몰살당하는 구덩이로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릴 수 없는 조건이 만들어져 있었다. 간간히 발사되는 우국의 기관총알이 격리상황을 굳히는 보조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후방 평지에 있던 제국군도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공격해 오는지 모르는데 구덩이 여기저기서 파편이 튀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산 꼭대기 뿐만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매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산 위에서 던지는 수류탄이 양대산맥 아래에 있는 참호를 엄호하듯 터지기 시작하자 확신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효과가 전혀 없는 원거리 저격엄호 보다 수류탄 투척이 적합하다는 생각을 추동했고 전병력에게 이런 상황이 전파되는 다섯번째 관성이 작동했다.
아직 무사했던 칠할의 구덩이와 후방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상황이 다급해 질수록 위치를 알수없는 공격에 본능적인 저항이 강해졌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었다. 여기에 산위에 있는 지원부대의 본격적인 총격이 기름을 끼얹어 상황이 단시간에 종료되도록 마지막 관성이 가세했다.
적이 힘을 주는 방향으로 점진적 관성을 장치해 천천히 끌어 당기는 도구로 참호와 개인호를 혼합변형해서 적용한 전술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미사일 기지의 정치경제적 결정력... 만들어져 있는 전략구도가 울타리를 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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