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자의 선물
오랫만에 같이한 동기간의 추억나눔은 멈출줄 몰랐다. 표지없는 책을 한손에 쥐고 어슬렁 거리며 따라가고 있던 전술은 오른쪽 눈을 스치는 빛줄기를 바라보기 위해 멈추어 섰다. 마지막 구덩이를 코앞에 둔 곳에서 반사되어 굴절된 햇빛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조사단이 파견될 예정이니 전장을 그대로 보전해 놓으라는 통보가 있었기 때문에 제국 특수부대의 주검이 가득한 구덩이들이 아직 수습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소년이 다가간 구덩이는 제국의 특수부대 선두가 생을 마감한 곳이었다. 시신들은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상태였다.
바로 거기에 반짝이는 별이 있었다. 전술의 행동을 지켜보던 두사람이 되돌아 내려왔다. 작전처장이 허리를 굽히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별이 사라진 자리에서 총신이 긴 권총 한자루가 손에 쥐어져 특이한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총기들은 수류탄 파편에 곳곳이 손상되어 있었지만 이것은 흠집이 하나도 없었다.
산아래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을 것 같아 군인으로서의 예의를 생략하고 권총을 꺼낸 자리를 향해 잠시 고개를 숙인 두사람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으로 올라가 산 아래를 굽어보는 자리에 앉은 세사람은 권총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이게 제국의 야전사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9정의 저격권총 중 한자루야... 형체를 알수는 없었지만 아까 그곳이 직선장군이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자리겠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선두에서 지켰던 참군인의 유품을 마주하게 되니 가슴이 뭉클해 지는군..." 숙연한 표정으로 부대장이 중얼거렸다.
"야전이 본능인 우리들에게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하세... 비통함에 잠겨있는 그의 동료들에게 정중히 돌려 보내는게 예의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름다운 죽음이 아닌가? 생각해 둔 바가 있기는 한데 시간을 두고 어떤 보답이 어울리는지 숙고해 보세... 그들이나 우리나 야전이 고향인 이심전심이 있지 않은가?"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은 권총을 품속에 갈무리한 작전처장이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지 반대편으로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깍아지르는 절벽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절경은 감탄사를 저절로 끌어내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가지 흠이라면 그들이 있는 정중앙과 좌우 양쪽 멀찌감치에 절벽을 방패삼아 하늘을 노리고 있는 미사일 기지가 있다는 것이다. 울창한 수림이 인공물에 바랜 아쉬움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전쟁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새들이 메아리와 합창을 하고 있었다.
"저 미사일 기지가 목표였겠지... 특수부대를 태웠던 경수송기가 출발한 거목지대 가까운 곳에 있는 산업시설이 이곳의 볼모 노릇을 해주고 있단다. 여기에 그곳을 초토화 시킬수 있는 미사일 기지가 없었다면 제국의 압도적인 공군력이 하품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국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심장이 거목수림 근처에 있는 황금지대 였다. 큰강이 완만하게 흐르고 각종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산업지대 이지만 강국과 치열하게 전쟁을 치루느라 정신이 없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미사일 기지를 구축한 우국에게 덜미를 잡혀버린 곳이기도 했다.
제국의 막강한 공군력에 밀려 제공권을 상실한 다른 나라들은 패퇴를 거듭하고 있었지만 제국의 심장을 움켜쥔 우국쪽 전선에서는 전투기를 단 한대도 구경할 수 없었다. 미사일 기지가 완공 될무렵 뒤늦게 알아차린 제국이 모든 전력을 우국으로 돌리려 할때 황금지대를 초토화 시켜 버린다는 억지력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강력한 반대를 무릎쓰고 이 미사일 기지구축을 강행한 사람이 부대장이었다. 소속정파를 떠나 합리적인 판단으로 길을 열어주는 소수 정치인들의 힘도 컸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일이라 무조건 내달렸지만 완공된 직후의 정치권 기류는 험악해 질대로 험악해 진 상태였다.
그들의 칼날이 제일먼저 향한 곳은 정치권 이었다. 내부 배신자들을 축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소속정당의 결정된 지침을 어기고 일개 군인을 지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냥 넘어갈 경우 중립을 표방하는 군인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견제하는 힘이 결성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사일 기지의 전략적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전면전에서 벗어난 우국의 경제가 빠르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여론의 눈치까지 보아야 할 상황이 되자 다급해진 정치권은 경제를 위해 의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개혁안을 꺼내 들었다. 경제회복의 결과에 편승하며 눈밖에 난 정치인들을 제거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향후 전략적 이해도가 떨어지는 정치권이 군과 갈등을 빚을 때 완충역할을 해줘야 할 정치인들이 제거될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군과 정치권의 충돌이 위험수위를 넘어서면 정치군인들이 갈라서며 내전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그 첫단추가 꿰어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미사일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많다며 지원부대를 신설해 부대장을 자임한게 그였다. 말이 부대지 소규모 병력을 지휘하는 한직중의 한직이었다. 이번 공로로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할 군인이 이렇게 나오자 정치권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충정을 높이산다며 황급히 쐐기를 박아버린 정치권은 줄을 대고있는 군수뇌부를 움직여 서둘러 부대장으로 임명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개혁안을 슬그머니 담넘겨 버렸다. 부대장을 지지했던 정치인들만 축출하기엔 너무 속보이는 일이라 정파에 충실한 의원 상당수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만년 부대장이었다. 미사일 기지를 구축한 주역이 지키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핑계로 발을 꽁꽁 묶어버린 것이었다. 전시의 진급은 복무연수가 아닌 전쟁에서 세운 공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예 현재의 계급에서 머물러 있으라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
정치권과 군이 얽힌 비사는 처음듣는 이야기였다. 시선한번 돌리지 않고 경청하고 있는 소년을 마주한 작전처장은 부대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 아이가 이번 결과를 만들어 냈다?" 직선 장군의 권총을 찾아낸 것도 우연 비슷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작전처장은 녹음이 짙게 맡아지는 산공기를 한 껏 들이쉬며 미소를 지었다. "떠들었더니 배가 고프군... 가서 한잔 곁들이며 식사나 하세..." 혼자말 처럼 내뱉은 후 앞장서서 걸어가던 작전처장은 철책이 막아선 곳에 있는 나즈막한 굴로 허리를 굽히며 들어갔다.
익숙한 몸놀림은 초행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간 두 사람이 허리를 펴자 넓은 동굴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 산위에 올라와 작업을 했었지만 여기까지 와보지는 않았었다. 잠시후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철문 앞에 서있는 작전처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가 두드리자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 틈새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문 밖에는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른 나무들이 빼곡했다. 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잎새 사이로 빛이 내리 꽃히고 있는 곳이었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잠시 적응을 한뒤 내리자 문명과 담을 쌓은 털복숭이들이 서 있었다.
'이야기와 시 > 전략전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호(塹壕)-개인호(個人壕 ) 혼합변형 전략 6 (0) | 2010.09.18 |
---|---|
참호(塹壕)-개인호(個人壕 ) 혼합변형 전략 5 (0) | 2010.09.18 |
참호(塹壕)-개인호(個人壕 ) 혼합변형 전략 3 (0) | 2010.09.14 |
참호(塹壕)-개인호(個人壕 ) 혼합변형 전략 2 (0) | 2010.09.12 |
참호(塹壕)-개인호(個人壕 ) 혼합변형 전략 1 (0) | 2010.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