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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시/전략전술

참호(塹壕)-개인호(個人壕 ) 혼합변형 전략 3

3. 정치

 

의외의 결과가 나온 중앙전선의 공방은 제국과 우국 두나라 국민들에게 하루에도 몇번씩 주고받는 인사처럼 일상적인 대화거리가 되었다. 제국민들의 충격은 우국민들의 기쁨이었다. 교차하는 희비만큼 군에대한 국민들의 마음도 정반대였다.

 

너나 할것없이 가슴을 펴며 최고의 군인으로 자랑하던 야전사자 직선장군을 잃은 제국민들의 슬픔은 수많은 이들이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비통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선두에서 공격을 지휘했던 그는 빗발치는 전선을 열어 제끼며 부하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백전불패의 명장이었다.

 

하지만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제국군의 중추가 된 8인의 장성들에 비할바는 못되었다. 아홉개의 별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돈독했던 동료를 잃은 그들의 심장은 차가운 얼음이 되어 창백한 얼굴로 슬픔을 말하고 있었다. 정치와 선을 긋고 군인의 본분에 충실했던 표상중 한사람이 떠난 것이다.

 

8인의 장성중 한사람이 이번 공격통솔을 나누어 맡았던 제2 지휘관 이었다. 지휘관이 아닌 상태에서 참전했었다면 계급장을 내던지고 명령불복종을 해서라도 제1 지휘관인 직선장군의 유품이라도 수습했었을 그였다. 이제는 하얀 햇살이 피부와 분간이 안되는 힘없는 얼굴로 권총을 들여다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벗이다.

 

이 권총은 9인의 야전사자들이 장성진급 기념으로 직접 제작한 저격용 특수총기 였다.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 산출한 강선의 상관관계를 적용해 고가의 합금을 절삭가공한 명품이었다. 여기에 일반 권총보다 훨씬 긴 총신이 더해져 소총에 근접하는 살상거리를 가진 저격수의 꿈이 고스란히 담긴 권총이 바로 이것이다.

 

손잡이에 하나의 별을 양각하고 1부터 9까지 음각된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을 무작위로 섞은 후 하나씩 집어들어 나눈 것이 9인의 우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허리에 손이 갈때마다 먼저간 동료가 생각났고 이제는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어버렸다.

 

국민들의 충격과 군인들의 사기저하가 걱정된 정치권은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숙고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이번 참패를 빌미로 권력확대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은연중에 직선장군을 무능한 패장으로 격하시키는 분석이 언론을 타고 있었다.

 

잔치분위기에 빠져있는 우국에도 정치권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대승을 거둔 부대장을 자기 정파에 연결하려는 치열한 공방이 정치권을 휘어감았다. 정치결벽증을 숨기지 않는 부대장을 군인의 유배지와 같은 골짜기에 가두는데 합심했던 때가 엇그제 였지만 이해관계가 갈리자 시치미 상쟁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인 부대장의 중립고수에 다시 손을잡은 정치권은 또한번 칼을 뽑아들었다. 직선장군을 패장으로 몰고가려는 제국정치권의 움직임과는 달리 적장이지만 마지막 단 한번만 패한 불후의 명장이라며 이번 대승에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인 행운이 있었을 것이라는 부대장 견제 움직임이었다.

 

부대장의 지휘력이 아닌 무언가를 찾기위해 조사특위를 만든 정치권은 사령부에 앉혀놓은 정치심복들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그 책임자로 부대장의 동기인 작전처장을 임명했다. 조사결과가 트집을 잡아내지 못하면 작전처장이라도 끌어내려 정치적 중립을 고수하고 있는 장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줄 복선을 깐 것이었다.

 

예리하게 날을 세운 것 같은 작전처장의 안경빛은 여전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착각이 일 정도로 선명한 콧날아래 굳게 다문 입으로 차에서 내린 작전처장은 빛바랜 계급장이 어깨를 누르고 있는 부대장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뒤를 조사단의 화려한 계급장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작전처장이 걸음을 멈추자 부대장이 거수경례를 했다. 동료들 보다 두단계 진급이 늦어지게 만든 정치권의 위력이 실감나는 만남이었다. 답례를 마친 작전처장은 조사단 파견 이유와 성실한 답변을 부탁했다. 사무적인 조사가 사흘동안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미 받았던 보고서와 완전히 일치하는 결과서가 만들어 졌다.

 

정치권이 바라고 있는 트집거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조사단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게 내버려둔 작전처장은 그들이 가져다 주는 보고서만 챙겨볼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사흘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작전처장은 정치심복들이 보고서 작성을 완료하자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제 싸움이 끝난 것이다. 정치권이 노리던 양수겸장이 무산되고 자신과 부대장, 그리고 다섯명의 동기들이 철칙으로 내세운 정치중립이 지켜진 것이었다. 동기중 가장 주목받고 있었던 부대장은 자기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모든 정파들을 멀리해 치루게 된 배척을 전무후무한 대승으로 무력화 시켰다.

 

이번 조사는 그것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 유일하게 전략통으로 들어간 작전처장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명의 동기 모두가 야전에서 날개를 활짝 펴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시작일 뿐이었다. 자신들 보다 더 높은 계급장으로 결정권을 행사하며 전쟁을 사익으로 취하는 정치권 자재들이 수두룩 하기 때문이다.

 

부대장 앞으로 다가간 작전처장은 어깨를 치며 손을 내밀었다. 사무적이었던 표정을 풀고 미소를 머금은 입가엔 오랜 우정이 묻어 있었다. 악수한 손에 힘을 준 부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한은 정치권이 장악하고 있지었만 전장을 움직이는 실행력을 야전이 모두 확보하게 된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주위와 멀찌감치 떨어진 두 사람은 복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을 포진지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말해주게... 준비된 것으로는 제국의 십만 특수부대중 절반을 무너뜨리기도 벅찼을 텐데 무엇이 전멸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인가?" 작전처장이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빙그레 웃던 부대장은 뒤를 돌아 그늘아래 등을 기대고 세운 무릎에 팔꿈치를 고인채 양손으로 책을 펼치고 있는 소년병을 쳐다 보았다. "저 아이가 답이야... 이야기가 기니 보고서 최종 확인을 핑계로 등산이나 하세... 저 친구들은 다시 올라가자고 하면 손사래를 칠게 뻔하니까..."

 

어제 전투당시의 산정상 병력배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함께 올라갔다가 학을뗀 조사단을 바라보며 부대장이 대답을 했다. 예상대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조사단을 남겨두고 전령인 소년병을 호출한 두사람은 모처럼 한가한 등산을 즐기며 옛날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