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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시/전략전술

참호(塹壕)-개인호(個人壕 ) 혼합변형 전략 1

1. 제국의 암습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제국측이 모든 특수부대를 일시에 투입한 대규모 암습에 우국의 중앙전선 대부분이 무너진 상태였다. 까마득한 좌우 산맥이 좁게 뻗어나가 고깔모양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공격자가 불리 한 지형이지만 방어하는 쪽 또한 전방이 차단될 경우 신속한 물자보급과 병력지원이 불가능한 단점이 있었다.

 

제국군 수뇌부는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선 곳곳에 흩어져 활약하고 있던 다양한 특수부대를 소규모로 나누어 여러달에 걸쳐 은밀하게 중앙전선으로 집결시켜 기습에 성공했다. 실패할 경우 제국군 특수부대 전체를 잃어버리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우국의 허를 찔렀던 것이다.

 

최전방에 있던 우국의 전차부대는 대전차 로켓포에 모두 궤멸 되었고 그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포병부대 또한 코앞에 들이닥쳐서야 알아차리게 된 제국군 특수부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아군과 뒤섞여 총격전을 펼치며 대포의 사거리 이내로 일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제국군의 근접공격 때문이었다.

 

일부 포병들이 포신을 낮추어 직사로 발사하며 저항을 했지만 극히 일부의 사상타격만 주었을 뿐 제국군 특수부대들의 진격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전황을 보고받은 우국군 수뇌부는 이렇다할 지원책을 세우지 못하고 그저 최후 저지선에 있는 부대장에게 최선을 다해 막아보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번 시간동안 전력을 집결시켜 중앙부를 장악한 제국군이 곧바로 쏟아져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막을 구축하기 위한 고육책 이었던 것이다. 고깔모양의 산이 만나는 지점 후방 바로 아래쪽에는 우국군의 전차와 병력들이 집결하느라 자욱한 먼지구름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었다.

 

장기간의 지루했던 대치상황이 마지막 일전으로 치닫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제 최후 저지선을 돌파하면 제국은 승리의 칠부능선을 넘어서게 된다. 제국군 통합 특수부대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지휘관은 오늘이 가기전에 이번 공격을 마무리 지을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배수진을 친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었던 최후저지선의 텅빈 막사와 창고들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화기와 군장만 없을 뿐 식량과 무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다급하게 퇴각을 한 것으로 보였다. 진지의 규모가 상당히 컸지만 소규모 지원예비대가 관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수색결과 진지 바로 뒤에 펼쳐진 완만한 경사지 곳곳에 개인호로 보기엔 꽤나 커다란 구덩이들이 조밀하게 조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지휘관은 진격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파놓은 목적이 있을 것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폭발물 매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탐색병을 차출해 구덩이 바닥에 쌓여있는 나뭇잎을 조심스레 걷어내며 수십개를 점검하도록 지시를 한 후 진지로 돌아온 지휘관은 의문을 풀기위해 막사와 창고를 꼼꼼하게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을것 같은데 확연히 잡히지 않는 꺼림직함을 떨쳐내기 위해서 였다.

 

무기고에는 꽤 많은 나무상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 일부엔 미처 다 가져가지 못한 수류탄들이 들어있고 바닥에도 굴러다니고 있었다. 소총상자도 발견 되었지만 기관총등 연발화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시야가 확보되는 높은 곳에서 화망을 형성하고 수류탄 투척으로 대항할 것이 틀림 없었다.

 

별다른 폭발물이 없다는 탐색병들의 결과보고를 전해들은 지휘관은 즉시 진격명령을 내렸다. 반격을 예상한 제국 특수부대는 참호와 참호로 넘어가면서 진격하기 시작했다. 잘하면 저녁식사를 고지에서 할 수 있을 만큼 신속한 전진이 이루어 지고 있었다.

 

장악한 참호가 삼백여개를 넘어설 즈음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일단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서 부터는 참호마다 폭발물이 매설되어 있었던 것이다. 할수없이 참호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낮추어 돌진하던 선두를 향해 우국군의 기관총이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일제사격을 시작한 제국군은 수류탄을 바로앞 참호에 던져넣어 폭발물을 제거한 후 다시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않아 뒤에서 전달해주던 수류탄 마저 다 떨어졌다. 문득 무기고에 가득한 수류탄이 생각난 지휘관은 상자째 앞으로 전달해 주도록 명령을 내렸다.

 

투척거리에 있는 참호에 있는 병사들은 손으로 던지고 멀리있는 참호에서는 유탄발사기를 사용해 수류탄을 퍼부은 효과는 예상외로 컸다. 전진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수십명씩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구덩이를 메우며 전진하다 보니 어느새 만여명이 넘는 병력이 참호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후방에도 우국군의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빗나가는 총알 없이 정확하게 제국군을 명중시키는 것으로 보아 저격수까지 배치한 모양이었다. 결국 전진속도를 늦춘 제국군은 무기고에 있던 수류탄을 모두 꺼내와 대부분을 앞으로 보내고 대여섯개 씩 병사들에게 나누어 준후 일제진격을 개시했다.

 

그런데 후방의 엄호속에 수류탄을 앞으로 투척해 가며 참호를 넘고넘어 가던 제국군 앞대열 곳곳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폭발물이 터져 참호속 병사들이 몰살을 당했고 그와 동시에 뒤에있는 참호 곳곳에서 폭발과 함께 흙바람이 휘몰아 쳤다. 게다가 박격포탄 까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우국군의 파상공세에 당황한 제국군은 어디있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절벽에 가까운 아주 가파른 근처 산비탈에 드문드문 매달려 있는 나무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며 수류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참호속으로 정확하게 투척되어 폭발하는 수류탄이 늘어만 갔다.

 

그렇게 하나둘 참호가 몰살당하는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될 무렵 최정예를 자랑하던 무적의 제국 특수부대는 전멸에 가까운 주검을 쌓아둔 채 겨우 수천명만이 퇴로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진지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병력들도 우국군의 공격에 대응하다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둠속을 추격해 오는 우국군에 반격을 하면 할수록 희생이 더해갔다. 결국 수백명으로 흩어져 무기를 다 소모한 후에야 우국군 포로를 관리하고 있던 후방부대와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십만에 달하던 특수부대가 수천명으로 유명무실화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