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는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았을 이야기입니다. 제갈량 만큼 비중있는 인물이 없는데요. 재상겸 군사로 경제와 전쟁을 균형있게 운영하는 현실적 감각과 적을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실용적 전략이 돋보이는 사람입니다. 이 제갈량이 남만왕 맹확을 일곱번 잡았다 놓아주었다는 칠종칠금이 아주 유명한데요.
제갈량의 의도대로 표현한다면 맹확의 판단력을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교육이었습니다. 맹확을 처음 사로잡았을 때 볼모로 잡아가거나 제거해 버리는 것이 가장 수월한 방법이었겠지만 모든일에는 늘 반작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맹확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면 수많은 세력들이 남만의 패권을 다투게 되었을 겁니다. 이들중 제갈량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줄 세력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움직이는 세력도 반드시 있겠지요. 이럴경우 피아를 구분해 우호세력을 확보하고 반대세력을 제압해가는 장기적 시간소모가 불가피해 집니다.
일곱번이나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기질이 강한 맹확만큼 남만을 하나로 끌고갈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최상의 해법으로 찾아낸 것이 단 한사람만을 수중에 넣는 칠종칠금입니다. 적의 수장, 지배세력만을 장악함으로써 상대국가 전체에 대한 영구적 통제장치를 꾀한 것인데요.
전쟁은 승패가름으로 끝나는 단순한 싸움이 아닙니다. 승리에 집착해 정작 전쟁에서 이기고도 그 후유증으로 망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전쟁을 목적으로 두면 적국의 제거가 다이지만 국가운영을 최대로 두면 전쟁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죠.
과정에 불과한 전쟁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하고 승패에 집착할 경우 적은 무조건 쓰러뜨려야 할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그 어떤 접근과 관계설정도 다 필요없고 오로지 싸워서 없애버리는 것 이외의 의미부여가 불가능해 지죠.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 수습해야 한다는 확실한 대책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거대한 위나라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배후의 남만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는 맹확의 제거는 전쟁의 승패에만 집착하는 단견이라는 게 제갈량의 판단이었을 듯 한데요. 그에게는 전쟁의 찰나보다 국가운영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무력으로 충돌해서 미사일을 날리고 핵을 쏟아붇는 물리적인 전쟁에서는 적의 수장(국가지도층)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승패의 열쇠가 됩니다. 하지만 정치외교 싸움에서는 상황이 달라지죠. 최상의 승리란 최소의 댓가로 얻어내는, 심지어 전쟁을 배제하는 것이 최대한의 국익이라는 것을 알아야 계산이 되는 분야죠.
다른 나라, 상대세력을 무너뜨린다고 해도 그곳을 완전히 점령해 통치할 능력이 안되면 싸우나 마나한 결과를 얻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적이 약해지기는 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적이 억누르고 있는 주변세력들의 발흥도 염두에 두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 제거해 버리자는 주장도 현실을 모르는 소리죠. 핵이 일반화 된 지금 완전제거 움직임은 공멸을 부르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피아가 다 죽더라도 전쟁이나 한번 해보자는 무책임한 전쟁광들이 할법한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싸움은 시간을 길게 끌더라도 한번에 끝내는 게 좋습니다. 그러자면 물리적 전쟁을 넘어 종전과 휴전 과정을 거쳐 영구적 종결장치를 관철시키는 정치외교 단계로 직행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이러기 위해서는 적을 물리적 전쟁상대 이상으로 봐야 할겁니다.
외골수로 무조건 싸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다면 그 다음 단계인 전쟁이후의 문제점과 해결책 및 대책에 대해서는 시선이 뻗어갈수가 없게 됩니다. 미국을 주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약소국을 핍박하던 제국이기 때문에 지도에서 지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들이 저질렀던 반인륜적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상대세력까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완전한 승리, 가장 빠르고 정확한 승리를 얻어낼 수 없습니다. 최악의 장수는 적을 최대한 커다랗게 만들어 버리는데요. 요즘 인터넷을 보면 전쟁이라는 극단적 주장을 입에 담는 사람 대부분이 이런 자충수를 두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장을 할때 국가의 지속적 운영과 민족의 미래를 위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한 것인가를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깨버리지 못하면 의식이라는 그릇은 늘 제약을 줄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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