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대충분석이라는 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창의적 직관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국제정세나 정치는 아주 지루하고 딱딱한 분야죠. 그러한 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제 블로그를 찾으시는 분들은 국가사회가 만들어 놓은 일상의 관성에서 약간은 벗어나 시야의 여유를 확보하고 계신듯 합니다.
직관력을 기르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할 텐데요. 우선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최상의 효과를 얻으시려면 몇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한자를 거의 모를 것... 아니면 약간만 알아도 되구요. 너무 많이 알면 이 방법이 소용없을 겁니다.
한자는 표의문자입니다. 한글과 한자가 뒤섞인 책을 수백, 수천번 읽어 문맥이 트이는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직관력인데요. 독서백편의자현 이라는 말이 바로 이것 입니다. 한글과 한자는 불가분의 상호보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둘이 함께해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수없이 반복해서 읽으면 어느순간 중간중간에 놓여져 있는 한자가 그냥 읽어지게 됩니다. 옥편은 절대로 쳐다 보지도 말고 우직하게 읽고 또 읽어야 하는데요. 저는 아주 우연하게 이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이 만들어준 기막힌 선물이었다는 것을 다 커서야 알게 되었지만...
할머니께서 제가 태어난 방에 아버지 형제분들이 보셨던 책들을 모아 두셔서 서고로 사용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책들을 꺼내보곤 했는데요. 그중 60년대에 출판된 삼국지가 있었습니다. 삼분지 일 비율로 한자가 섞여 있어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상당히 벅찼는데...
조금 읽다가 그만두곤 했었는데 한해 두해 반복해서 읽다보니 어느순간 문맥이 트이더군요. 그러면서 줄줄줄 한자가 읽어내려 가지는데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그러려니 했었습니다. 한문이 혼용된 당시의 신문을 봐도 웬만한 내용은 대충 알수 있었죠.
그냥 보면 문맥이 파악되다 보니 옥편을 들추어 보기가 귀찮아 지고 한자를 외울 필요를 못느끼다 보니 부작용도 꽤 있었습니다. 머리속에 뭘 담아두려고 하지 않는 무의식이 작동해 초등학교 4학년 딱 일년동안 교과서를 달달 외워본 후 책을 덮어버렸으니까요. 이후에는 공부하는 척만했지 거의 당일치기만 했습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죠. 사회과목을 아주 좋아했었는데요. 도덕 시험성적이 잘나온다고 도덕성이 높은게 아니라는 배움과 현실의 불일치를 아는 순간 공부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3학년 때까지는 폐결핵으로 오늘내일 하느라 결석을 밥먹듯이 해서 공부할 겨를이 없었으니 정말 딱 일년입니다.
두번째 방법은 장기를 두는 것입니다. 이것도 모든 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닐겁니다. 장기 두는 것에 흥미가 있어야 하니까요. 재미를 느껴야 몰입할 수 있고 그래야 무의식 범주에서 작동하는 직관력을 깨울수 있습니다. 장기를 좀 두어 보신 분들에게는 좋은 방법이죠.
저자를 모르겠는데 일본 만화중 "라이징 임팩트"라고 있습니다. 책방에서 이걸 먼저 빌려보신 후 이 글을 읽으시면 더 쉽게 이해가 되실듯 한데요. 골프관련 만화입니다. 꼬마 주인공의 라이징 임팩트...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골프공을 타격할 때 정중앙 타격점이 암흑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라이징 임팩트라고 표현하더군요.
아무것도 안보이고 오직 그 빛만 반짝이는 순간... 작가가 설명해 주지는 못했지만 이것이 바로 직관력이 발현되는 순간입니다. 머리속에 무수한 생각들이 널려있는데 그중 하나가 반짝하며 떠오르는 그 순간... 외부의 대상을 직관하는 것과 다를것 없는 내부의 생각에 대한 직관이죠.
그런데 제가 더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것은 다른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샤이닝 로드... 골프공과 홀컵 사이의 잔디위에 한줄기 빛이 흐르면서 길을 열어주는 것을 이렇게 부르더군요. 라이징 임팩트가 단 하나의 대상을 직관한 것이라면 샤이닝 로드는 시작과 결과로 흐르는 길을 직관하는 종합적인 능력입니다.
계산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장기를 둘때 두세수만 보는게 고작인데요. 나머지 수는 그냥 감으로 갑니다. 보통 제대로 두려면 다섯수 이상은 보아야 하는데 천성이 그렇기도 하고 감을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는데도 그만이라 일부러 대충 둡니다.
넷마블에서 어느정도 두는 사람이면 거의 9단으로 승급을 하는데요. 9단이라고 다 같은 9단은 아닙니다. 9.1단~9.9단까지 능력차가 존재하죠. 9.1단 부터 9.5단 까지는 종이한장 차이의 능력밖에 없지만 9.6단 부터는 책한권 정도의 커다란 능력차이가 있는데요. 제 경우에는 9.5단 정도 입니다.
어느날 대국을 구경하다가 얼떨결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상대방은 9.9단급의 초절정 실력자더군요. 근근히 방어하며 중간쯤 두었는데 그때부터 상당히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장기기물이 사면초가에 놓여졌는데 그순간 눈앞에 반짝하는 빛이 흐르며 행마의 순서가 펼쳐졌습니다.
딱 한수차이의 수순이 차라락하며 머리속을 때렸는데요. 거의 일곱수가 단 한번의 반짝하는 빛을타고 눈앞에 그려진 것입니다. 한호홉에 내리두어 역전에 성공하는 순간까지 정적이 흐르는 듯 캄캄한 눈앞에 오직 장기판만 보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골프의 샤이닝 로드와 똑같은 직관력입니다.
골프도 극도의 집중을 하면 직관력을 얻을 수 있겠지만 머리속에서 발생하는 결과물이 아닌 외부에 있는 사물에 그려지는 직관력은 창의적 직관력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죠. 골프만화를 거론한 것은 직관력을 좀더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만화가 가지고 있는 보완적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화처럼 머리속을 이완시켜 주는 것도 없는데요. 그림 하나하나 사이에 놓여진 생략된 건너뜀을 무의식이 따라가기 때문에 에니메이션 같이 연속된 영상물을 따라가는 수동적 수용에서 벗어나 두뇌의 연상작용을 최대한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만화는 직관력으로 가는 중간 디딤돌 역할을 해주죠. 정말 좋은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직관력을 얻을 때 부작용이 따르기도 합니다. 책을 이용하는 방법과 장기를 두는 방법은 여러해를 투자해야 하는데요. 초단기간내에 두뇌능력을 증폭시켜 위와같은 방법과 병행할 경우 상당한 효과를 볼수도 있지만 정신력이 감당하기 힘든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이 부분은 인연이 닿으시는 분들께 따로 말씀을 드리기로 하고 제가 이야기 했던 것 이외에도 각자에게 알맞은 방법들이 무궁무진할겁니다. 일상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한걸음 떨어져서 살펴보시면 직관력을 계발하는 다양한 길이 보이실 듯 한데요. 만화는 꼭 보시기 바랍니다. 직관력의 감초같은 것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