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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네티즌 정책

대선 결정력(중도와 민족주의)

정치진영 분석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와 참여하는 유형에 따라 대별해 보면 진보, 보수, 중도가 됩니다. 이중 진보와 보수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세력들이죠. 이념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저엔 철저한 계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그 이익을 정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호도하는 것이 문제죠. 내세우는 것은 대의명분 이지만 추구하는 것이 잇속 이다보니 존경받는 이가 하나도 없을 수 밖에요.

 

보수는 그 사회에서 지켜야 할 이익이 상대적으로 많은 집단들의 생존 논리입니다. 재산과 권력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법을 고수하려고 노력하지요. 이들이 이룩한 것들은 그 시대의 법을 기반으로 축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보는 이러한 보수들이 구축해 놓은 아성을 허물어서 자신들의 영역을 새로이 만들어 내려는 집단들의 공격논리 입니다. 어떠한 사회든 내부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고 보수가 과도하게 점유하고 있기 때문죠.

 

현재 한국에서는 뉴라이트라는 강화된 보수논리와 뉴레프트라는 신진보 논리가 공방을 벌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판이하게 다른것 같지만 공통된 이념이 하나 있지요. 자본주의 성역을 가운데 두고 자신이 적자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왜 적자타령을 하고 있겠습니까?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세력이 권력을 가질 자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을 입에달고 사는 것입니다. 상속권을 얻기위한 자식들은 다 그렇게 계산적인 효도를 과도하게 보여주며 경쟁을 하지요.

 

중도가 형성되는 이유

 

미국은 대표적인 양당제 국가입니다. 한국의 정치세력들이 정책정당을 외치며 흠모해 마지않는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뒤로한 채 번갈아가며 나누어먹기 가장 좋은 상태가 보수와 진보의 양진영 놀음이지요.

 

윷과 비슷한 놀이입니다. 유권자가 아무리 머리를 써서 표를 던져도 앞면 아니면 뒷면이 나오니 판갈이가 될수 없는 겁니다. 뒤집어 놓아봐야 여전히 국가와 국민을 요리해 먹는 양면 후라이팬과 같은 것이지요.

 

노회찬 의원이 판갈이를 해보자고 외쳐댔지만 그도 진보라는 판위에 국가와 국민을 올려놓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은 뭐가 다를까요? 국민들에게 새로운 후라이팬 위로 올라와 자신들을 위해 요리되어 달라는 주문일 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쪽도 선택하지 않는 중도층이 늘어나는 겁니다. 극단적인 진영의 이익에 매몰되면 국가사회가 위태로와 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중도층이 커다랗게 형성되고 있는 이유는 극단의 이익이 기승을 부려 정치혐오감을 증폭시킨 탓입니다. 보수는 진보가 경제를 망쳤다고 비난하고 진보는 보수의 원죄를 주장합니다. 책임이 실종된 공방일 뿐인데...

 

이러한 보수와 진보 양진영은 각각 30% 내외에서 한계를 보입니다. 논공행상 해야할 과실의 한계 때문에 이 이상의 규모를 넘어서기 힘들죠. 보혁의 균형은 적정이윤이 만들어 내는 자율비례 입니다. 그래서 중도가 40%내외를 유지하게 되지요.

 

중도의 선택인가 아니면 대세가 견인하는 것인가?

 

이명박 전시장이 절묘한 발언을 했습니다. 충청도가 선택을 해서 대권이 만들어 지는 것인지, 충청도가 대권을 따르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지요.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충청도 표가 몰릴것 이라는 암시입니다.

  

그의 말대로 지역구도에 따른 이해득실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충청도는 늘 대권을 따라간 것입니다. 따라서 충청도는 중도가 아닙니다. 그저 이해득실로 진영을 선택하는 극단일 뿐이지요.

 

충청도는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공약만 적절하게 제시하면 언제든지 끌어들일 수 있는 유동표에 불과합니다. 다른지역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렇게 확실하게 움직이는 표심은 보수나 진보 모두에게 손쉬운 공략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짜 삼고초려 해야할 대상은 이해관계를 후순위로 판단하는 중도세력 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불이익을 감수하면 서라도 국가와 국민의 최대 공통이익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투표 참여자의 최소 10~20%에 달하는 이들을 누가 확보하느냐에 따라 선거의 결과가 판가름 날겁니다. 그래서 늘 정치인은 대의명분을 입에 달고 삽니다. 중도를 끌어들이기 위한 구애작전 이지요.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표를 공략하는 데는 두가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진영을 묶는 이해관계고 다른 하나는 중도를 끌어들이는 대의명분 입니다. 이 두가지를 잘 운용해야 합니다. 중도는 이익을 따라가지 않고 대의명분을 선택합니다.

 

누가 중도세력을 얻을 수 있을까?

 

선거의 결정권은 늘 중도가 행사해 왔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진영논리는 왜 기득권 일부가 진보를 지지하고 무산층이 보수를 지지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신보수, 신진보를 선전하기 바쁩니다.

 

소신에 따라 움직이는 중도는 보수진영에도 있고 진보진영에도 있고 관망층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가장 넓은 시야로 가장 많은 세력분포를 가지고 있으면서 늘 최적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것이 중도세력 입니다.

 

이러한 중도층을 제대로 확보하는 정치인은 진보와 보수 양진영에서 어떠한 후보를 내세워도 당선될 수 있습니다. 보혁에서 최소 5~10% 정도 은둔하고 있던 중도층을 빼낼 수 있다면 양진영을 20~25% 선에 묶어둘 수 있지요.

 

그러면 보수에서 5~10%, 진보에서 5~10%를 덜어와 중도관망층에 더하면 최소 30%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겠지요. 다가오는 대선은 이 중도층을 정치세력으로 구체화 시키는 후보가 좌우하게 될것입니다.

 

이러한 중도층의 공통이념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민족주의죠. 그동안 보수와 진보가 멸살하려던 민족주의는 숨을 죽여가며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들을 통합하려면 진영을 과감하게 뛰쳐나오는 한사람의 유력정치인이 있어야 합니다.

 

중도층이 혈혈단신이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역할이었습니다. 진영에 매몰되면 사대정치를 뛰어넘어 민족주의 세력이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도층이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할 경우 보수나 진보 중 한쪽은 대세에 편승해서 이익을 찾으려고 할것이 분명합니다. 중도를 얻으면 양극단의 대립을 허물어 버리고 도움이 되는 한쪽을 선택해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