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대상)에 따른 방법의 차이
모든 일은 그 목적(대상)에 따라 알맞은 방법이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사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냥도 어떤 것을 잡느냐에 따라 방법이 달라집니다.
일반짐승을 잡을때는 눈에 띄는 대로 총을 쏘아야 합니다. 토끼, 꿩, 멧돼지, 고라니등 보이는 족족 잡아야 농작물 피해를 막고 사냥도 유지됩니다.
작거나 개체수가 많거나 떼지어 움직이는 짐승들은 눈에 띄는대로 대응해야 기하급수적으로 발생시키는 부작용 누적을 차단할수 있습니다.
호랑이 같이 커다란 짐승은 토끼잡듯 아무때나 총을 쏘아 잡을수 없습니다. 몇달, 몇년을 숨죽이고 길목을 지켜야 기회를 만날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정치적 비판 또한 목적대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국(국제사회)에 대한 비판, 해법,, 문재인(국내정치)에 대한 비판, 해법이 같을수 없는것이죠.
미국에 대해서는 거시적인 비판과 장기적인 해법을, 문재인에 대해서른 미시적 비판과 단기적인 해법을 적용해야 옳습니다. 기계적 일반화는 오류죠.
박정희 거악론의 파탄
박정희 거악론이 대표적인 기계적 일반화 입니다. 모든 문제가 박정희 탓이고, 박정희 세력만 쫓아내면 한번에 다 해결된다는 급진주의입니다.
그래서 진행되고 있는것이 박근혜 탄핵인데요. 사드배치, 한일정보 군사협정이 해결될 것처럼 선동해 정권을 바꿨지만 달라진게 없습니다.
전격적인 사드배치, 한일정보 군사협정 연장은 한국사회의 박정희 거악론을 파탄냈습니다. 국제문제인 사드, 한일협정을 국내용으로 본탓이죠.
미국에 대한 거시적 비판, 장기적 해법으로 다가가야 할 문제를 정권교체 정쟁으로 악용했습니다. 정치적 거짓말, 사기였음이 드러난 것이죠.
이제 박정희 거악론에 기대온 적폐청산은 그 패악적인 위력을 상실했습니다. 더이상 한국사회를 분열시키지도 시끄럽게 선동하지도 못할겁니다.
미국과 문재인
미국의 패권전횡, 한국지배, 분단강제는 비판해야 합니다. 또한, 분단극복을 위한 해법도 내야합니다. 그 첫걸음은 불가항력 상태인 식민인정입니다.
미국의 지배를 인정하고 일제~미제 백여년이 완성한 불가항력적 지배구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한 스스로 풀수없는 족쇄를 직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냉철한 현실인식 위에서 미국을 비판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국의 미래를 예측진단할수 있는 것인데요. 자주, 국격같은 소리는 헛짓이죠.
남한에게 불가항력인 미국의 지배를 벗는 길은 북한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북미평화협정, 미군철수, 통일을 통해 자주,국격을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외부적 요인, 여건에 알맞은 한국내부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불가항력인 미국에 맞서 자주, 국격을 찾는 것은 번지수가 잘못된 것이죠.
문재인의 종속성은 사드배치, 한일정보 군사협정으로 드러났습니다. 전작권을 회수하며 미국을 극복한다는 주장은 헛소리중의 헛소리입니다.
미국의 불가항력을 인정하듯 문재인의 쓸모없음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국의 영향력은 수백년이지만 문재인의 영향력은 고작 5 년에 불과하죠.
하루살이쯤 되는 정권수명으로 거시적인 자주, 적폐를 청산한다는 건 허무맹랑한 정치사기입니다. 이게 가능하면 노무현때 다 되었겠지요.
친노문 세력같이 시도때도 없이 준동하는 무리들을 그때그때 비판하지 않을경우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바퀴벌레 처럼 갈수록 퇴치하기 어렵습니다.
실시간으로 오류를 지적해야 한탕주의 사기정치를 견제할수 있습니다. 친노문의 문재인 변호는 정파이익을 위한 집단이기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비판단계
비판이란 개선의 여지가 있거나 발전가능성이 있는 대상에 대한 도움말 입니다. 싹수가 노랗거나 그 시커멈이 드러난 상대는 비난의 대상이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를 별로 비판하지 않았는데요. 반민독재로 판정된 세력을 비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난의 대상일 뿐이죠.
이미 비난의 대상으로 규정된 인물은 국민 대부분이 손가락질을 합니다. 거기에 손가락 하나 더 보태는 것은 감정소모지 시대를 앞선 지성이 아니죠.
지난해 부터 문재인 개새끼라고 비판, 비난을 해왔는데요. 이제 그럴 단계를 지난듯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대거 비판, 비난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비판은 그 정치인의 정체성, 본심을 확인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정체성, 본심이 확인되면 쓰임새릍 취하고 없으면 버리는 것이 비판의 끝단계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묻지마 지지, 맹목적 편가르기에 휩쓸립니다. 정치적 자주를 지키기 위해서 개개인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것이죠.
[덧글] 아무리 힘들어도, 스나이퍼, 역사나무, 고향의 봄등은 자주정치가 아니라 노예정치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 교묘함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인을 비판한 이유
'세상만사 > 현실적 통일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싸움의 방법론 (0) | 2017.09.14 |
---|---|
국내정세 대충 2017.09.11 (0) | 2017.09.11 |
북한으로 본 미사일의 발전방향 (0) | 2017.09.07 |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통일(2017.09.04) (0) | 2017.09.04 |
현실을 바꾸는 고차원적 접근 (0) | 2017.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