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로
평성의 귀족들이 전멸했다는 소식은 사족을 달며 세상을 한바퀴 돌았다. 대장군이 홀로 말을 몰아 귀독들을 베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는 무용담까지 퍼졌다.
평성이 코앞인 바람의 나라는 허무맹랑한 소문에 웃으면서도 서서히 동요하고 있었다. 지배층은 전전긍긍 했고 백성들은 가뭄의 단비라 청량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제버릇 남주기 힘든 법이다. 왕은 왕대로 귀족은 귀족대로 방탕한 생활을 버리지 못했다. 언제 놓칠지 모른다는 강박증까지 더해져 갈수록 포악해졌다.
마지막 담배가 맞있듯 종말에 다다른 부귀영화가 헤어날수 없이 달콤했다. 더 빼앗고 횡포를 부렸다. 스스로 민심을 버리느라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화된 시기에 대장군 일행이 도착했다. 왕과 귀족들이 척살을 명령했지만 군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허공에 떠버린 권력이 그렇게 끝나버렸다.
백성과 군부는 그대로 였지만 왕과 귀족이 사라지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굶주림이 끝났고 법만 지키면 누구나 살만한 세상이었다.
다른사람 위에 군림해서 이익을 독차지해 살아가던 전횡과 횡포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을 다투던 기회주의적 인간들이 열성인자로 도태되는 질서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라가 망할것 처럼 정쟁을 일삼던 무리들이 모두 숨어버렸다. 너무 조용해서 아무것도 하는게 없는듯 한데도 나라는 쌩쌩하게 돌아갔다.
대장군 일행이 한 일이라곤 한적한 곳에 논밭을 일구고 자리를 잡은 것 뿐이었다. 늘 같은 시간이 흐르고 가정을 꾸려 같은 또래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일곱성씨가 각자의 터전을 잡을무렵 도포를 입은 종교인이 방문했다. 그날밤 조용히 모인 자리에 정적이 흘렀다.
"드디어 숨겨진 정보조직들을 모두 찾아냈습니다. 말단에서 최고수뇌까지 모두 파악했습니다. 국가규모를 넘어 적쟁을 획책하는 대단한 곳도 여럿입니다."
침묵을 깨고 도포인이 입을 열었다. 정보조직이 국가규모를 넘어섰다는 것은 여러개의 생명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듯 합니다. 바람처럼 단숨에 휘몰아 쳐야 뿌리를 뽑을수 있는데 말이 달리는 속도로는 한참 못미칩니다. 시공간 제약이 너무 큽니다.
인적, 물적, 정보적 이동속도가 시공간의 제약을 최소화 할수 있는 먼 훗날에 맡겨야 겠습니다. 그때를 위해 만인지하를 드러나지 않게 키웁시다."
그들의 자손들은 항상 적당했다. 하는듯 안하는 듯 일을 해냈고 나서는 듯 물러서는 듯 국난을 해결했다. 덕분에 역사기록에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전쟁효율성을 높이려는 손자병법 그대로였다. 싸우지 않고 해결했고 길게 싸우지 않았다. 기다림은 끝이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