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돌아온 야전선물
동부전선을 통해 제국에 침투한 일행은 제국의 수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첩보대의 중심에서 전략이 상황을 담당했고 가장 경험이 풍부한 정찰조장이 소년병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제국의 수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모처럼 휴식을 취한 다음날 아침일찍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을때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발생했으니 잠시 대기하고 있으라는 전략의 연락이 들어왔다. 암살명단에 들어있던 제국의 정치인 두명이 하루 간격으로 저격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발적인 상황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가능성이 극히 낮지만 우국의 암살계획이 알려진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각국에 흩어져 있는 첩보대 전체가 가동되고 있었다. 확인결과 첫번째 목표였던 인물은 제국의 국민에게, 다음날 암살된 두번째 정치인은 확인되지 않은 나라의 전문가에게 당한 것이었다.
첫번째 정치인이 운영했던 중견기업은 외부로 뻗어나갈 덩치가 되지 않아 주로 제국 내부에서 이익을 찾고 있었다. 돈 되는 것에 물불을 가리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었다. 대량으로 납품을 받은후 고의적인 대금지연으로 부도를 조장해서 헐값에 인수하는 수법을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당한 하청업체 대표가 대로변에서 권총을 난사해 첫번째 암살 목표를 제거해 준 것이었다. 두번째 정치인은 대기업의 식민지령 이권사업을 하청받고 있었다. 이권에 참여하느라 미리 지불한 뒷돈을 만회하기 위해서 점령지 국민들을 막대하기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범인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수거한 총알의 종류를 분석한 결과 암살용 탄환이었음이 드러났다. 정치적 처신을 잘해 제국 내부에 원한살 일을 하지 않았던 인물이라 외부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측이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제국이 뒤숭숭해져 있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자신들의 계획이 드러나지 않았음을 확인한 일행이 제국의 수도에 도착했을 땐 곳곳에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계령이 내려졌던 제국의 수도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만큼 수많은 군인과 장갑차들이 경계를 서며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결국 정찰조장을 포함한 첩보대원들은 안가에 머물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할수없이 소년병들만 밖으로 나가 세번째 목표물을 정탐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제국기업에 뒤지지 않는 사세를 자랑하는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세번째 정치인은 사설경호원까지 동원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여러날 동안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회사로 다시 회사에서 집으로 오가는 동안 그의 모습이 외부로 노출된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였다. 안풀리는 일에 매달리던 소년병들은 머리를 식힐겸 산 중턱에 있는 공원에 올라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의치 않으면 그만 두는 것도 임무라던 전략처장의 말이 전술의 귓가에 맴돌고 있을때 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전쟁이 손뻗치지 못한 별천지에서 밝게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소년병들의 가슴이 아리고 있었다. 적국의 어린이들 이었지만 이러한 일상이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념에 잠겨있던 전술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격과 공병소년도 덩달아 일어나 전술의 뒤를 따라 공원 화장실로 들어갔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닫혀있는 문들을 두드려 본 전술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동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앉아있던 자리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도 한참 후 모자를 쓴 그 청년이 밖으로 나왔다. 제국에서 흔히 볼수있는 평범한 옷차림을 추스른 청년이 천천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전술은 숫자를 다 센후 동료들과 함께 청년이 들어가 있던 화장실의 문을 열어제꼈다.
아무리 살펴 보아도 별다른 게 없자 천장을 확인하기 위해 변기에 올라선 전술의 눈에 창문 밖으로 아스라히 보이는 세번째 정치인의 집이 들어왔다. 품속에서 망원경을 꺼내들어 확대하자 양옆으로 가로막고 있는 건물들 사이로 노출된 무방비 상태의 정치인 거실이 다가왔다.
시간을 되새겨 보니 일정하게 출퇴근 하고 있는 세번째 정치인의 귀가시간에 모자쓴 청년이 이곳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슴스레 천장을 덮고있는 석고판을 떼어낸 후 손을 더듬어 올리자 천에 둘러싸인 소총의 윤곽이 만져졌다. 정황을 판단한 전술은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안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가에 도착한 전술은 이러한 사실을 정찰조장에게 설명했다. 다음날 정찰조장이 일러준 대로 공원 화장실 방향으로 위치를 잡고 집 근처에서 주시한 결과 어김없는 시간에 거실에 들어서고 있는 세번째 정치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번째 정치인을 암살한 범인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그는 진짜 전문가였던 것이다.
어떤 목적으로 암살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당장 결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며칠후에 있을 제국의 애국 기념일에 맞출 가능성이 높았다. 그날 제국 국립묘지에서 직선장군의 추도식도 열릴 예정이었다. 정치인이 나가는 오전에 저격을 할지 들어오는 오후에 할지 그것만 모호한 상태였다.
하는수 없이 방향을 전환한 소년병들은 직선장군의 권총을 추도식장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 누가 암살을 하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물러서라는 작전처장의 당부는 이러한 변수까지 최대한 활용해 보라는 조언이었다.
애국 기념일 아침, 국립묘지로 출발한 소년병들은 비상경고등을 켜고 달려가는 제국의 군용차들을 만나게 되었다. 사방에서 어지러이 몰려가고 있는 군용차들이 말해주고 있는 방향은 세번째 정치인의 집이었다. 모자를 쓴 청년이 제국의 애국기념일 아침을 열어제낀 것이었다.
직선장군의 권총을 넣은 빵봉투를 끌어안고 있던 일격이 한개를 꺼내 베어 물고 우물거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죽여야 하는 악역을 대신해준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최고의 저격수 였지만 사람을 쏜 적이 없는 일격이었다. 소년병들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그림단장이 그런 훈련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있는 세번째 정치인이 피격된 때문인지 제국 국립묘지의 경계가 상당히 허술해져 있었다. 게다가 야전사자들에 대한 예우를 핑계로 금속탐지 과정을 생략한채 추모객들을 받고 있었다. 정치인들이 암살당하기 시작하자 위기를 느낀 정치권이 방송으로 국립묘지의 무방비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것이다.
덕분에 아무런 제재없이 추모실에 들어선 소년병들은 자기들 차례가 오자 꽃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에워싸며 허리를 숙였다. 직선장군의 권총을 꺼내 밑바닥에 넣은 일격은 두개를 집어 건네주는 전술의 손에서 꽃 한송이를 받아 들었다. 순간 동작으로 눈치채지 못하게 야전의 선물을 돌려준 것이었다.
헌화후 묵념을 마친 소년병들은 빵을 나누어 먹으며 걸어나왔다. 길게 늘어선 추모 대열이 바구니를 덮고 있는 꽃포장을 금방 벗겨낼 것이라고 판단한 소년병들은 걸음을 재촉해 안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직선장군의 유품이 동료들을 만나게 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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