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작용과 반작용_2
석연치 않은 모양새로 부대장과 그림단장의 지휘부가 끌려가다시피 출발했다는 생각에 산위로 달려간 전략은 첩보대의 모든 통신망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산아래 업무에 매달리느라 확인하지 못했던 그사이의 첩보 보고서를 전부 읽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내용이 없었다.
다만, 전술과 함께한 서부전선 파견임무를 이끌었던 정찰조장의 짤막한 보고가 눈에 들어왔다. 우국기업의 이상한 움직임을 파악하는 대로 다시 알리겠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계속해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지만 통신망을 통해 들어오는 내용도 평상시와 다를것이 없었다.
그래도 꺼림직해 전술에게 확인해 본 결과 서부 사령관과 휘하 지휘부도 새벽같이 수도로 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훈포상 행사를 내세웠지만 전쟁중 지휘부 전체를 불러들인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조치였다. 중립동기 전원이 같은일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전술은 정신을 집중해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때 서부전선에 비상이 발동되고 있었다. 선제포격으로 기선을 제압한 제국의 대규모 전차부대가 1차 저지선을 급습했던 것이다. 다행히 점심시간을 1시간 앞당긴 덕분에 커다란 혼란없이 제국군이 주춤할 정도로 강력하게 맞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잠시였다. 일선 통솔자들이 무전으로 상황을 주고받으며 제국군의 틈새를 공략하기 위한 대열을 구축할라 치면 후방에 있는 대포와 제국 전차들의 집중포격이 가해졌다. 간신히 주저앉힌 일단의 제국 전차들을 활용해 대전차 병력이 자리를 잡았다는 무전이 들어오면 그곳에 집중사격이 들어왔다.
격전지의 지형실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전술은 상황판에 그려지고 있는 변화가 선뜻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우국의 움직임에 대한 제국의 대응은 사후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국의 의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미리 움직여야 가능한 시차없는 맞물림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양쪽다 비행기들이 뒷짐을 지고 있어 위에서 내려다 볼수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제국의 위성중 지상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전송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것은 없었다. 게다가 미사일 기지에서 전송해준 위성상황에 따르면 이시간에 접전지역을 지나가고 있는 위성은 하나도 없었다.
접전지역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되는 곳은 1차 저지선 근처에 기다랗게 누워있는 낮은 동산 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접근이 불가능한 지뢰지대 였다. 드넓은 평야에서 두드러진 곳에 수비병력을 주둔시켰다가 제국의 포격에 몰살당한 경험이 있는 우국이 뿌리다 시피한 지뢰로 방어를 대신해 놓은 장소였다.
다급하게 사령관 자리로 뛰어간 전술이 무전기를 들어 명령을 하달했다. 동산에 포진한 병력은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고 있다가 제국의 전차들이 우회해 통과할 때 측면을 공격하라는 내용이었다. 제국도 지뢰지대라는 것을 익히 알고있었다. 위험을 감수하며 동산을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한 것이다.
그런데 전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단의 제국 전차들이 동산으로 돌격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제국의 포대가 날린 포탄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나즈막 했던 동산이 포연으로 주저앉은 황토를 드러내자 전술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전령에 불과한 전술이 지휘명령을 내리자 의아해 했던 상황병력도 제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정신을 가다듬은 전술이 첩보대원인 일격을 불렀다. 그리고 일격을 통해 첩보대가 사용하는 모르스 통신으로 현재의 상황을 중앙전선에 있는 전략에게 통보했다.
이소식을 접한 전략은 우선 서부전선에 있는 첩보대원들을 각 단위부대 통신병 곁으로 이동시켰다. 미사일 기지에 있는 단파 송수신장비가 첩보대의 독자적 통신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뒤이어 우국은 물론이고 모든 나라에 있는 첩보대 전체에 상황발생을 알렸다.
전략이 마련해 준 통신망을 통해 제국에 노출되지 않는 지휘가 가능해진 전술은 모든 포대에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길게 자리잡고 있던 전차들을 본진 중앙으로 모이도록 했다. 이런 조치를 취한 전술은 제국이 감청하고 있는 무선통신을 이용해 1차저지선 생존 병력에게 흩어질 것을 명령했다.
더 저항해 봐야 희생만 커질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산개해 유인하면 제국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1차 효과가 있었고, 곧 이루어질 반격로를 후퇴하는 아군이 가로막는 자충수를 제거하는 2차 효과가 있었다. 반격이 주효해 전세를 역전시킬 경우 제국군을 완전히 포위해 버리는 포진이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국군의 진격 속도였다. 빠르게 돌진해 올수록 우국이 유리했다. 후방에서 지원해 주고 있는 제국 포대의 전진방열 시간을 추월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 전차대열은 속도를 높일수록 흐트러져 조밀해 질 가능성이 높았다. 철갑탄으로 재장전한 우국의 포격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장점이 또하나 있었다.
1차 저지선이 방어를 포기하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1차 저지선에서 일방적으로 몰렸던 우국군이 전차대전 당시의 위력을 재현해 나가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제국군에게 일방적으로 몰릴 우국군이 아니었다. 백전노장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제국전차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갈 무렵 수도에 있는 정찰조장의 연락이 들어왔다. 우국기업과 제국기업의 거래에 의해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그 거래에 의해 중립동기 지휘부가 수도로 불려갔고 해당 부대의 지휘권을 교체하는 것까지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지휘권 변경서를 펼쳐든 장성이 중앙전선 지휘소에 도착했다. 이소식을 전해들은 전략은 저격수를 호출해 지난 전투에서 노획한 제국 특수부대의 저격용 소총으로 위협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지휘관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부대에 있는 첩보대를 동원해 지휘부 숙소로 인도해 감시에 들어갔다.
그즈음 수도에서 발생하는 단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통보를 미사일 기지로 부터 받게 되었다. 첩보대를 가동해 위치를 확인한 결과 주요시설 곳곳에서 단파가 발신되고 있었다. 비공식 부관으로 사실상 첩보대를 이끌고 있는 정찰조장이 다급하게 해당시설 장악을 현지에서 명령했다.
정치병력이 포위하고 있는 국영방송을 제외한 모든 민영 방송이 중단 되었고 전화국과 이동전화 기지가 작동을 멈추었다. 그에 맞추어 전략이 성명서 형식으로 암호유출 사태와 방송제한, 그에따른 조치를 공포하며 국영방송국의 방송제한 협조를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또한, 미사일기지의 단파 수신음을 압류한 방송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지휘부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도록 만드는 조치였다. 이 모르스 부호는 중립 동기들이 학습 동아리 활동을 하는동안 여러해에 걸쳐 보완을 거듭했던 독자적 암호체계였다.
초성, 중성, 종성을 멋대로 배열하는 변수를 첨가해 말도 안되는 단어를 송출하는 것이 장점이었다. 여기에 자음과 모음 각각의 순서를 재배치 하는 되돌림 기능도 있어 완전히 숙지하지 않으면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생방송을 활용해 첩보대 만의 독자적인 상황중계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전술에게 연락해 제국군의 퇴각을 허용해 되도록 빨리 전장을 수습하고 가용병력을 수도로 급파할 것을 권했다. 이 권유에 따라 산개해 있던 1차 저지선 병력들이 거리를 벌리며 공격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그렇게 제국군을 보내고 전열을 정비한 서부전선에서 일단의 전차들이 수도로 출발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제국에 대한 경고를 곁들인 전략은 전차의 수도진입을 힐난하는 토론장의 정치권을 누르기 위해 장악하고 있는 민영방송으로 사실상 내부진압을 준비하고 있던 국영방송국 포위병력의 모습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사이 남아있는 첩보대원들을 지휘해 주요 정치인들과 유력 기업인들에 대한 보호겸 감시를 단행한 정찰조장이 여력을 몰아 제국의 간첩망 색출에 나서고 있었다. 그림단장과 휘하 지휘부의 공백을 메운 전략이 모든 상황을 조율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현장지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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