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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시/전략전술

기갑전-종심절단 격파

3. 전장의 기록

 

사령관의 연락이 있었는지 전략 일행이 막사 앞에서 전술을 맞이했다. 야전이슬을 맞으며 생활하는 정찰대라 둘러메고 걸치면서 출발하는 만반의 준비가 있었던 것이다. 약간의 전투식량을 더 챙겨넣은 전술이 배낭을 들고 나오자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달리듯 이동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부대를 빠져나온 정찰대는 들풀이 무성하게 마중나온 곳에 이르러서야 속도를 늦추었다. 울타리 안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낄만큼 야생화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경계없는 하늘을 이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산과들이 안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자 녹이슨채 멈춰있는 전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주 보거나 엇선 제국과 우국의 전차들이 당시의 전투대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포탑이 날아간 것도 있었고 옆구리가 뚫려 있는 것도 있었다. 주저앉은 장갑차도 여기저기 보였다.

 

새까만 정찰단속에서 홀로 하얀 전술의 얼굴에 탄성이 피어나고 있었다. 무적을 자랑하던 제국의 전차군단에 최초의 패배를 안긴 곳이었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던 전술이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일과가 끝나면 늘 망원경으로 거닐어 보았던 장소였다.

 

그 모습을 본 정찰조장이 휴식을 명령했다. 대원들이 자리를 잡는사이 군장을 내려놓은 전략은 전술을 따라 잔해 속으로 걸어들어 가며 전장의 기록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동생인 전술 못지않게 궁금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빠진듯한 기록이 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놓은 결과였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당백의 혈전을 벌여 무적의 전차군단을 물리쳤다는 짤막한 설명은 분석을 좋아하는 전략과 전술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무엇이 수적열세를 극복하게 만들었는지 알고싶었다. 이것은 두 소년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제국 또한 분석을 거듭해 기갑전술을 보완했던 중요한 문제였다.

 

파괴된 장갑차는 대부분 제국의 것이었다. 제국전차의 포탑부엔 무수한 총탄자욱이 새겨져 있었다. 우국의 전차에는 없는 흔적이었다. 거의 녹으로 변화해 부스러지는 대전차 로켓 발사관도 꽤 발견되었다. 유심히 살펴보던 두 소년은 관통된 제국 전차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관통부위의 형태는 두가지였다. 이것은 우국 전차도 마찬가지 였지만 그 비율에서 차이가 나고 있었다. 대전차 로켓에 관통된 것으로 보이는 우국의 전차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제국의 전차는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의 격전이 소년들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때 정찰조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가 보니 어느새 준비했는지 푸짐한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첫날인 만큼 든든히 체력을 비축해 두자며 앉기를 권했다. 소풍나온 기분으로 식사를 마친 일행은 차를 마시며 부른 배를 달래기 시작했다.

 

"이 곳에 대해 꽤 많이 알고있는 듯 한데... 뭐 발견한게 있나?" 성지순례를 하듯 전차들의 무덤을 돌아다니는 두소년을 주시했던 정찰조장이 궁금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왔다. "예... 전투병 및 대전차병을 대거투입해 전차의 열세를 극복한 것 같습니다. 포탑에 집중된 탄흔과 로켓포에 피탄된 비율로 확인했습니다."

 

정찰조장은 순진한 눈을 깜빡이는 열다섯 짜리 소년이 이렇게 대답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몸을 곳추세웠다. 수많은 저격병들을 인솔해 이곳을 찾았던 그였다. 대부분 같은 관심을 보였었지만 전차대전 당시의 상황을 꿰뚫어 본 병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공군력을 억제하고 있는 미사일기지는 전차대전 이후에 건설되었다.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제국의 공군은 우국을 압도하며 여러차례 공습을 가해왔다. 기동성이 있는 전차는 그런대로 살아남았지만 포병전력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정지작업을 해놓은 탄탄대로로 제국의 전차들이 쇄도해 오고 있었다.

 

다급해진 우국 수뇌부는 모든 공군력을 총 동원해 제국경제의 심장인 황금지대 공습에 나섰다. 덕분에 전격전에 나섰던 제국의 전투기들이 중앙전선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일단의 직승기들이 제국 전차들 상공에 남아 있었지만 우국의 맞대응에 별다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부전선 처럼 산이 거의 없는 드넓은 평야에 떠있는 직승기들은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고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우국의 직승기들과 뒤엉켜 일진일퇴를 거듭할 뿐이었다. 제국의 직승기들은 지상의 전차를 지원할 겨를이 없었다. 저격수까지 탑승한 우국의 입체 근접공격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공군력을 무력화 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지상의 열세는 여전했다. 기갑전력을 지휘하고 있는 장교는 정치성이 짙은 인물이었다. 직면한 전투의 실마리를 찾을 생각은 안하고 패전에 따른 자기정파의 타격을 걱정하느라 선뜻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부관이었던 서부 사령관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전차부대를 이끌고 나섰다. 서둘러 나가지 않으면 본진에 갇혀 괘멸될 다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휘하 병력을 이끌고 합류한 것이 부대장과 그림단장 이었다. 부대장이 지휘하는 전투병과 그림단장의 저격부대가 대전차병이 탑승한 장갑차를 뒤따랐다.

 

전차포탄이 오가는 사이 맞부딪힌 양국 전차들이 뒤엉켰다. 그 틈새를 우국의 장갑차와 짚차가 파고 들었다. 주저앉은 전차를 은폐물로 활용한 저격수들이 제국전차의 포탑위를 겨냥해 기관총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전투병들도 가세해 제국의 포탑에 총알세례를 퍼부었다. 조준경은 이차 파괴대상 이었다.

 

가장 넓은 시야를 확보했던 포탑위의 기관총수가 제거되고 조준경들이 파괴되자 우국 대전차병이 마음놓고 대전차 로켓을 발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저앉힌 전차를 은폐물로 삼아 넘고 또 넘어가기 시작했다. 지원병력의 활약에 뒤질새라 우국의 전차들도 속력을 내고 있었다.

 

백병전에 가까운 접전이 가속화 되자 제국의 수적 우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는 제국의 전차들이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접전에 휘말린 자국 전차들이 우국의 방패 역할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국이 적전차를 은엄폐물로 삼았던 것이다. 개활지에 취약한 전투병의 약점이 사라지고 결정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밀하게 뒤엉킨 전차의 기동력이 사라져 버렸다. 전차와 전투병이 동급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전차 한대와 대전차병 한사람의 전력이 같아졌다. 제국의 대전차 부대가 사력을 다했지만 이들은 전투병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발사시 노출정도가 상대적으로 심하고 재장전 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수밖에 없는 대전차 병에 비해 전투병의 신속도는 수십배를 상회했다. 심한경우 장갑차에서 하차하다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 장갑차를 먼저 처리하는  공격에 제국의 전차는 고립무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앞에있는 소년병이 저격대가 투입된 것만 제외하고 이모든 것을 분석해 낸 것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 해준 정찰조장은 다시한번 두 소년을 바라보았다. "형제라던데... 너희들에 대한 기대가 크구나..." 저격대 일원으로 참가했었던 정찰조장이 식어버린 차를 들이키며 미소를 지었다.

 

서부 사령관이 미세하게 절뚝거리는 게 전차대전때 입은 부상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맨몸으로 육탄돌격을 해야했던 전투병들과 저격대의 희생이 가장 컸다. 선두에서 돌격한 전차승무원 대부분이 산화했고 사령관은 중상에서 회복한 수많은 사람중 하나였다.

 

이때의 전공으로 서부전선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림단장도 저격대를 맡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가 없으면 잇몸 이라지만 휘하 부대원들을 대거 잃어버린 중립 동기들은 기피해왔던 정치권과의 마찰을 불사하며 부대장이 앞장서 미사일 기지를 강행했던 것이었다.

 

미사일 기지가 들어서면 전투기와 전폭기를 생산하는 기업이 타격을 입을수 밖에 없었다. 이 기업이 우국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세력의 핵심이라는게 문제였었다. 정치와 언론은 물론이고 군에까지 광범위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전차대전으로 형성된 민심과 군심을 억누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