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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시/마우스 창세기 1.0

마우스 창세기 214,215,216

214,215,216

태산같이 느껴지던 두 제일기사의 검세를 시전한 은빛 제일기사는 검신합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기쁨을 무덤덤한 미소로 대신했습니다. 문득 비비가 궁금해진 은빛 제일기사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꼿꼿이 선채 빤히 쳐다보는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자신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던 은빛 제일기사가 이상한 바위로 올라가 안으로 사라지자 깜짝 놀란 비비는 전후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치를 단단히 잠근 은빛 제일기사는 자리에 주저 않으며 말했습니다.


“비비가 깨어났는데... 슬슬 관찰을 시작 해야지...” 이 말에 철갑 제일기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합니다. "하하하...비비에 대한 분석은 다 되었네... 아까부터 자네의 행동을 몰래 따라 하던데...", “그래? 어쩐지... 그녀석을 쳐다본 순간 묘한 동질감을 느꼈었거든?”


“비비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거의 동시에 행해지는 모방 능력이야... 쉽게말해 만일 검을 잡을수 있어 자네와 대련 한다면 자네가 비비에게 시전하는 모든 발검을 동시에 자네에게 시전할 수 있다는 뜻이야... 마치 거울 앞에서 움직이면 거울 속에 있는 내가 그대로 따라 하듯이...”


이번엔 푸른 제일기사가 보완 설명을 해줍니다. "아까 비비에게 돌을 던졌을 때 돌에 맞닥뜨린 비비만 피해야 하는데 한 마리가 피하는 행동을 하자 모든 비비가 따라서 튀어 올랐었습니다. 또한 이곳에 있는 모든 돌과 나무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나무에 숨어있던 비비들을 처치한 후 예전에 죽어있던 나무를 살펴보니 밑둥에 비비들의 맹독이 의도적으로 투입되어 고사 시켰음을 발견했습니다. 비비들은 모방을 통해 일체화되는 단계를 넘어 모든 개체의 형질과 외부환경을 하나로 통일 시키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말을 들은 은빛 제일기사가 푸른 제일기사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말씀대로 비비들의 모든 행동을 되짚어 보니 그러한 본능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말에 철갑 제일기사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대상이든 가장 강력한 장점이 최대의 약점일 수밖에 없어... 그 장점의 이면에 숨어있는 약점을 발견해 내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완벽에 가까운 상대를 만날수록 의외의 허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비비들 또한 이러한 법칙에서 벗어 날 수는 없다네...”


“천하무적인 비비의 독이 푸른 제일기사와 철갑 제일기사의 검에 묻어와서 오히려 비비들을 검은 연기로 만들어버렸으니 일리있는 말이지...” 금빛 제일기사가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자 철갑 제일기사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자네 저 금속과일을 손이 아닌 발이나 입으로만 먹을 수 있겠나?”


“?... 먹을 수는 있겠지만 무척 불편하겠지?”, “그럴거야... 만약에 말일세 자네 손톱에도 비비와 같은 맹독이 묻어 있다면 어떠한 점이 불편할까?”, “닿는 것 마다 검은 연기가 되거나 녹아 버릴테니 손으로는 적을 공격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을 것 같은데?”


“두발만 가지고는 나무도 올라가지 못하겠지?”, “아! 그렇군... 나무위에 숨어서 공격하려던 비비들은 모두 독이 없는 비비들 이었어...”, “그래, 정말 나무위로 올라가지 못하겠군... 앞발로 나무를 잡는 순간 녹아버릴테니...”

 

“바로 그거야...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나무 위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비비들이 집중력을 분산시키긴 하겠지만 치명적인 위협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 “숲속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층 높아 졌는걸...”
이에 푸른 마우스가 다시 몇마디 보탰습니다.


"만일 제가 대신 먹여준다면 손톱에 맹독이 묻어 있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제 짐작으로는 독이 없는 비비들을 부하로 거느리고 식사시중을 들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비비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고 그 중 독을 지닌 비율이 어느정도 인지 알 수는 없지만 초기엔 독이 없는 비비들이 싸움에 내몰릴 것입니다."

 

"숫자의 우세를 앞세워 우리를 지치게 만든 후 지배계급에 해당하는 맹독을 가진 비비들이 나서겠지요. 우리는 이것을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독이없는 비비들을 전면에 내세울 때 최대한 제거해 놓아야 합니다."

 

"독이 없는 비비들이 없다면 독을 가진 비비들은 과일 열매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것입니다. 독이있는 비비들의 식사시중을 들어 전력을 유지해 주고 있는 독이없는 비비들을 집중 공격하면 상대적 위기감으로 맹독을 가진 비비들이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엇을 것입니다."

 

"그때 그들중 가장 우두머리 급에 있는 비비들만 집중 공격해서 제거 한다면 하늘 연못으로 가는 길을 열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비들의 우두머리는 늘 가장 뒤쪽에 있던데요? 앞장서서 공격해 들어오는 여러마리의 비비들을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말을 들은 푸른 제일기사가 전차 뒤쪽에 준비해 두었던 단검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 단검을 사용 한다면 먼 거리에서 대장 비비가 선두에 있을 때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푸른 제일기사는 단검 세자루를 철갑 제일기사에게 주었습니다.


“나머지 세자루는 제가 사용 하겠습니다.” 푸른 제일기사가 건네준 단검을 품에 갈무리한 철갑 제일기사는 생각보다 길어진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일단 대장 비비만 제거하면 비비들의 공격 대형이 흐트러질 거야... 동시 공격이 장점인 비비들이지만 대장을 잃고 나면 공격도 동시에 주춤해 지겠지..."

 

"그들이 우물쭈물하는 그순간을 놓쳐서는 안되네... 이제 회의를 마치도록 하지... 한숨 자고나면 머릿속이 저절로 정리되어 더좋은 생각이 떠오를 거야...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얘기 하도록 합시다.” 공격 전담율이 높은 푸른 제일기사와 철갑 제일기사를 제외한 네 제일기사가 두시간씩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섰습니다.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아기마플 옆에서 자고있는 박쥐 제일기사는 약간의 신음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마플의 상태를 살펴보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모습을 본 은빛 제일기사는 박쥐 제일기사의 몫까지 내리 네시간 동안 불침번을 선후 다음 순서인 금빛 제일기사를 깨웠습니다.


전차의 외시경으로 묶여있는 비비를 바라보니 미친 듯이 이리펄쩍 저리펄쩍 뛰어 다니며 “꽥꽥” 거리는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점점 상태가 심해지는 군...” 다음날 아침일찍 눈을뜬 제일기사들은 아기 마플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은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마지막 불침번인 다이아몬드 제일기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약 1시간 전쯤부터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데?” 외시경으로 바라본 비비는 바위 곁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온 기사들이 빕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듯 부릅뜬 두눈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비비는 이미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었습니다.


앞발과 뒷발은 얼마나 격렬하게 뛰어 다녔는지 껍질이 벗겨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동일시할 대상이 없어진 본능이 비비의 죽음을 불러왔군... 삶의 목적을 상실한 본능만큼 커다란 공포를 맛보는 경우는 드물지...”, “결국 개체를 무시하는 동질화 본능이 스스로를 미치게 만들고 죽음으로 내몬 것이로군 그래...”


씁쓸한 표정을 지은 철갑 제일기사가 비비의 맹독이 뭍은 검을 비비의 주검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사라진 비비의 처절했던 모습은 측은한 동정심을 일으켰습니다. 하루사이에 칼날의 반이 녹아 검은색 독이 뚝뚝 떨어지는 검들을 사막의 모래속에 깊이 묻었습니다.


“정말 불쌍한 생명체로군... 생명의 다양성을 못견디어 하더니 종말엔 자신의 존재조차 거부할 수밖에 없는 비극을 운명으로 살아야 하다니...” 아침식사를 든든히 마친 제일기사들은 여분으로 준비해온 검들과 필요한 장비들을 챙긴후 바위계곡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제의 싸움터에 도착해 보니 비비들의 시체와 쓰러져 있던 나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허허, 비비들의 결벽성이란... 깨끗이 청소해 두었군 그래...” 손톱의 맹독을 이용해 모두 연기로 만들어 버렸는지 그많던 주검들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철갑 제일기사와 푸른 제일기사가 앞장서서 숲속으로 들어서니 예상했던 대로 갈색 비비들이 앞다리와 뒷다리에 걸쳐 펼쳐진 날개를 이용해 빙빙돌며 활강해 내려와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땅을 박차 오른 푸른 제일기사가 나는듯 나무줄기를 발로 차서 공중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비비들을 베어 내렸습니다.


그사이 숲속에 숨어 공격할 기회를 엿보던 흰색털을 가진 독을가진 비비들을 일찌감치 발견한 철갑 제일기사가 신속히 베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10M를 전진하는 동안 한번도 땅에 발을 딛지 않은 푸른 제일기사는 나무줄기를 차고 건너편 나무에 도달해 다시 발을 튕겨 이동하며 비비들을 낙엽처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한편 아기마플을 안은 박쥐 제일기사를 세방향에서 호위하며 전진하는 세 제일기사들도 푸른 제일기사와 철갑 제일기사가 미처 제거하지 못한 비비들을 베어가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무려 500M를 전진해 탁트인 잔디밭을 만난 제일기사들은 재빨리 잔디밭 가운데로 달려가 경계태세를 갖춘 후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들이 지나온 금속 나무숲에는 바닥을 가득 메운 갈색 비비들 위에 드문드문 흰색 비비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다이아몬드 제일기사가 말했습니다. “내평생 이렇게 많은 살생을 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도대체 몇이나 죽였는지 헤아릴 수가 없군...”


이렇게 말하는 사이 군데군데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비비들이 꿈틀거리다가 흰색 비비의 맹독 손톱에 몸이 닿아 검은 연기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앞쪽을 살펴보니 1KM 정도 펼쳐진 금속나무 숲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큰산이 잔디밭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큰산이 얼마 남지 않았군... 아기마플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어... 무슨일이 었어도 오늘중으로 비비들을 돌파해야 하늘 연못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 텐데...” 박쥐장로의 우려가 있기는 했지만 하늘 바로 아래에 있다는 하늘연못으로 가는 길이 이토록 험난할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