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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병력손실이 커져 이제는 두배나 차이가 나는 검은 기사단의 함성소리는 패배를 인정한 빛의나라 진영에 숙연한 장송곡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한 싸움이었습니다. 까마득한 국력차이를 극복하고 검은군단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만큼 모두가 더할수 없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기꺼운 것입니다.
코앞으로 돌진해온 검은 기사단이 치켜든 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려는 순간 검은장군의 항복명령을 수신한 작전참모는 즉시 공격중지 북소리를 울린후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가까스로 펴고 허리에 차고있던 칼을 빼어 바닥에 던졌습니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검은 장군께서 항복명령을 내리셨다.” 자신들이 내려치는 검과 올려막는 빛의나라 마우스들의 검이 맞닿은 상태에서 무장해제 명령을 받은 검은 기사들은 지체하지 않고 힘을 거두고 칼을 땅바닥에 버렸습니다.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서 기사회생한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빛의나라 마우스들은 비로소 승리를 실감하고는 얼싸안았습니다. 굵은 눈물이 소리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겸연쩍은 듯 주먹으로 훔친후 하늘을 올려다 보던 수색함장은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병사들의 등을 토닥여 주었습니다.
잠시후 수색함장이 전쟁을 마무리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무장해제한 검은군단을 절벽산 평지로 호송해 임시 수용소를 만들어 감시하도록...” 멀지 않은 곳에 호리병 처럼 생겨 입구가 좁고 내부가 넓은 절벽으로 둘러쳐진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검은군단을 이동시킨 빛의나라 마우스들은 자신들을 충분히 전멸 시키고도 남을 찰나를 이용하지 않고 무조건 검은장군의 명령을 이행한 검은군단의 철두철미한 명령체계에 내심 감탄한 터라 후방에서 보내오는 긴급물자를 대거투입해 막사등를 비롯한 수용시설을 지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전쟁이 마무리 되는 순간 완전히 빛으로 변한 지혜의 탑이 윗부분부터 무지개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두동강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제왕검과 검은장군이 항복을 선언하는 순간 알 제일기사가 제왕검 위에 던져 버린 하나검도 빛으로 분해되어 무지개에 흡수되었습니다.
지혜의 탑을 모두 빨아들인 무지개는 끝부터 스러지며 큰산위로 사라져 갔습니다. 같은 시각 작렬하던 번개가 멈춘 어두나라 힘의 탑도 빛의 무리로 변해 무지개를 따라 큰 산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큰 산에서 빛으로 만난 힘의 탑과 지혜의 탑은 두 탑의 형태가 결합되어 하나의 탑이 완성되었습니다.
장방형 지혜의 탑 위에 전망대 상단의 뾰족한 힘의 탑 모양이 하나 된 탑은 사흘을 큰산위에 머물다 하늘이 열리자 그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두 탑의 근간인 지혜의 돌과 힘의 돌이었기 때문에 단순 건축물인 지혜의 탑과 힘의 탑은 여전히 북극행성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다만 전과같은 막강한 능력을 가지지 않는 평범한 탑으로서 말입니다. 이 지혜의 탑에 제일기사들이 머물며 검은장군을 격리하고 나머지 검은 기사단은 모두 절벽 수용소로 보내 한곳에 수용했습니다. 말이 격리지 지혜의 탑에 멀찌감치 둘러쳐진 울타리를 넘지 못할뿐 어떠한 제약도 검은장군에게 가해지지 않았습니다.
절벽계곡에 만들어진 수용시설에 수용된 검은군단은 최고위직인 작전참모를 중심으로 일사불한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끝냈습니다. 가끔 검은장군을 예방하는 작전참모가 때마침 병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수색함장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목례를 교환하고 걸음을 옮기던 작전참모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 종류와 양이 포로인 자신들에게 지급되는 것과 똑같은 것을 보고 발길을 돌려 수색함장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식사를 하신 겁니까?”, "하하하, 예... 식량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양을 많이 줄였습니다."
"식량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저희야...” 말을 맺지 못한 작전 참모는 포로 신세인 자신들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병사들과 한 식탁에서 평소의 반으로 줄어든 식사를 소탈하게 하고 있는 빛의 나라 지휘관들을 보며 얼음장 같던 심장이 다시한번 녹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호송차량에 탑승해 검은장군이 격리된 지혜의 탑으로 달려가는 작전참모는 검은장군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하 공동에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하루하루를 칼날처럼 예민해진 본능에 의지해 주변에 있는 모든 검은 마우스들을 경계하며 살아가던 작전참모였었습니다.
당시 열세살인 자신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덩치가 비슷한 검은장군을 외부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후미진 곳에 있는 동굴속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동굴 바닥이 잘 정돈되어 있고 한쪽 구석엔 금속열매가 소담히 쌓여있어 정성들여 사용한지 오래되어 보이는 듯한 천혜의 보금자리에 이끌려 들어가게 된 곳입니다.
그곳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열세살의 작전참모였지만 힐끔 쳐다본후 금속열매를 몇개 던져주곤 바닥에 누워 코까지 골며 잠들어 버린 꼬마 마우스를 선뜻 공격해 제거할 결심을 굳히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난후 바깥에 나갈땐 전후방을 나누어 맡아 효율적인 경계로 전보다 훨씬 편한 생활을 누리게 된 두 마우스는 투쟁본능이 덜한 아기 마우스들을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자신들의 동굴로 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금속 나무열매 중 중금속 성분이 덜한 열매만 골라 채집해 동굴에 쌓아놓고 투쟁본능이 발동해 서로 죽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뭉치게 된 어린 소년 마우스들이 가끔 지하공동 반대편에 들어가 정상인 마우스들에게 검술을 익힌 검은 장군의 조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훗날 아비규환의 지하공동을 평정한 검은군단의 핵심 세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태어나 처음 경계심을 풀고 검은장군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도 아까와 같이 가슴이 뜨거워지고 콧등이 시큰 했었습니다. 정기적인 예방 회수가 거듭될 수록 표시는 나지 않았지만 오랜 지기로서 감지할 수 있는 건강이상이 느껴집니다.
검은장군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감을 느낀 작전참모는 평상시보다 오랜시간을 정좌한채 큰산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장군의 옆에서 묵묵히 앉아 있다 돌아갔습니다. ‘한달의 여유만 더 주어 졌어도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작전 참모가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차창뒤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상실감으로 인해 흐릿해져 갑니다. 수용소 막사로 돌아온 작전참모는 빛의 나라 병사들의 식사량을 검은 기사단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숙의 끝에 중지를 모은 일단의 장교들이 작전참모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작전참모는 수색 함장에게 이것을 전달해 계곡근처에 있는 대평원 일부를 할당받아 금속나무 농장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포로수용소지 검은장군의 항복명령을 끝으로 절대 칼을 잡지 않는 검은군단은 자치시설을 스스로 마련해 운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마우스들은 이렇게 서서히 빛의 나라 마우스들과 서로 동화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빛의 나라 병사들의 경계가 철저하기는 했지만 멀찌감치 철책을 옮겨놓아 갇혀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고있습니다. 심지어 호형호제 하는 마우스들까지 있습니다.
너무나도 흐뭇하게 지켜보는 수색함장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전쟁의 상흔이 아물게 되면 너나 구분 없이 하나 되어 살아갈 수 있는 맑은 세상을 모두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굳건한 희망을 한 호홉 크게 들이쉬며 가슴에 담았습니다.
세달동안의 침묵을 깨고 박쥐 제일기사를 청한 검은장군은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전파발신을 부탁했습니다. “얘야, 가슴을 열고 하늘을 보거라...” 아주 짧은 내용을 흔쾌히 큰산 너머로 발신한 박쥐 제일기사는 무념무상으로 정좌한 채 평온한 미소를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둔 검은장군을 돌아보았습니다.
순간 알수없는 상실감이 한 방울의 눈물이 되어 박쥐 제일기사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검은장군의 죽음을 지체 없이 수용소에 있는 검은군단에게 알렸지만 예상과는 달리 모두들 무덤덤합니다. 되레 이상하다고 생각한 빛의 나라 병사가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검은 마우스를 불러 세우고 까닭을 물어보았습니다.
“우린 다 알고 있었어... 1년 전 갑작스레 악화된 검은장군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전쟁을 시작하게 된 거지...”, “그래도 그렇지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나?”, "... 작전참모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교는 벌써 며칠째 식음을 전폐한 상태야..."
"우리 일반 병사들마저 그러고 있으면 안 되겠기에 기운들을 내고 있는 것 뿐 이지..." 작전 참모를 비롯해 검은군단의 모체가 된 일곱명의 최고위급 마우스들도 단식을 통해 검은장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직접 막사로 찾아가 이를 만류하던 수색함장은 작전참모의 한마디에 설득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우리들의 수명 또한 검은장군과 다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생사를 함께한 그가 갔으니 이세상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지요.” 검은군단과 함께 검은장군과 일곱 명의 검은 마우스들을 대평원의 양지바른 곳에 정중하게 안장한 빛의 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는데 전력했습니다.
검은장군의 사망 후 다시는 검을 잡지 않은 제일기사들은 제일기사 직을 사임한 후 각자 깨달음을 위한 구도의 길을 떠났습니다. 지난 전쟁에서 알 제일기사와 검은장군이 보여주었던 혼연일체의 무아지경을 가슴에 담았던 제일기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마우스들이 이를 만류했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 자신들이 군의 최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핑계로 평화시에 부담이 될 휘하의 각군을 해체해 최소병력만 남겨 통합군을 만든 후 은빛 사령관 휘하로 전속시켜 버렸습니다.
모든 전쟁 이후에는 논공행상이 수반되기 마련이나 제일기사들의 용퇴로 인해 상을 다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일먼저 길을 떠난 이는 단연 알 제일기사였습니다. 알 제일기사는 예전처럼 눈만뜨면 숲속에 들어가 노느라 식사때도 거르는 마플과 박쥐, 다이아몬드를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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