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가지 차원
혼자서 살수없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간혹 외딴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극히 드문경우죠. 국가사회의 테두리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사이,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해 지는데요. 사람사이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인지를 살피는게 삶의 첫걸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사이를 총 다섯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자기자신과 의식의 사이는 영차원, 부모자식과 형제자매 사이는 일차원, 부부.연인 사이나 친구 사이는 이차원, 직장동료등 사회적관계 사이는 삼차원, 이 모든 물리적 관계를 넘어서 나와 불특정다수인 인류전체와의 사이는 사차원이 됩니다.
영차원과 서구의 개인주의
서양의 경우 가족집단 등에서 사람을 분리해 개인주의로 발전을 했는데요. 관계의 가장 낮은단계에 집중한 탓에 개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개념은 확실하게 세웠지만 가족이나 국가사회등의 보다 고차원적인 인간관계를 등한시 하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 자기자신과 의식의 영차원 방향으로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가장 고차원인 인류전체와의 사이인 사차원 관계입니다. 다섯가지 관계차원이 시계바늘 처럼 돌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개인주의로 치닫다 보면 결국 전체로 귀결되는 어김없는 법칙이 서구의 인권개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권개념은 보편성이라는 합리성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강대국 국민들의 인권은 신성불가침이 되고 침략받는 약소국 국민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인간관계 최저차원인 서구의 개인주의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진단해 볼 수 있는 증거가 됩니다.
미국등의 개인주의는 인류전체로 연결되는 관계차원의 완성된 요소가 되지 못합니다. 사회에서 완전히 독립된 개체로서 개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최대한 선의 개체로서 개인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서구의 개인주의는 소속국가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장 앞서있다고 평가되는 미국의 개인주의가 제국의 패권전쟁에 절대다수가 무비판적으로 동조 내지는 묵인하고 있는 것 자체로 입증되는 시각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개인주의는 관계차원의 출발점인 영차원이 될수가 없습니다. 미완성의 사람사이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영차원의 개념은 무엇일까요? 자기자신과 의식의 비 물리적 관계인 영차원은 부처가 말한 천상천하유아독존일 수도 있고 사람이 곧 부처다라는 개념일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더한다면 천부경이 말하고 있는 사람이 곧 우주다 라는 포괄적 의미에 온전히 담길수 있는 개념이겠지요.
이렇게 모든 관계에서 벗어난 존재로서의 사람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이 동등하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데요. 사람을 일이삼차원의 물리적 관계에서 독립시키면 무리없이 물리적 관계를 넘어서는 사차원 인류와 하나가 됩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가 다른 나라들을 악의 축으로 명명하고 비난했던 기저에는 서구 개인주의의 한계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이익에 구속된 개인주의는 패권에 부역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니 물리적 전쟁과 경제적 침탈로 인류를 나누고 공격하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서구 개인주의의 비인간적 공격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민족이 간직해 내려왔던 사람사이를 적극적으로 재평가 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다르지 않고 그 뿌리가 같다고 생각하다 보니 생겨나는 것이 정입니다. 사람과 자연, 우주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일.이차원 관계
부부.연인 사이가 이차원 관계인데요. 자기자신과 의식의 영차원관계, 부모자식.형제자매의 일차원 관계는 선택이 불가능한 관계인 반면 이차원 관계부터는 선택이 가능한 관계입니다. 선택이 불가능한 자기자신과 혈연관계 사이는 의식적으로 설정하거나 변화를 만들어 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차원, 일차원 관계를 어떻게 하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 또는 가족전체의 이해관계가 나빠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많이 이해하고 보다 많이 대화하고 보다 많이 마음을 열어 가까워 지도록 노력을 해야만 발전을 이룰수 있는 가장 어려운 관계입니다.
비선택적으로 만나는 영차원과 일차원 관계와 달리 이차원 관계는 함께 만나서 이루어가는 과정이 주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차원 관계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과 나를 가장 존엄한 사람으로 존중하며 다가서야 완성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 갑니다. 가장 보편적인 정체성 기반은 직업인데요. 사회에서 주어지는 직업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해당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것과 견줄만한 행복한 삶이 그리 많지 않지요. 물론, 직업과는 별개로 매진하는 관심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것도 손색없는 자기 완성입니다.
사람으로서 온전히 존중해 주고 상대방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이차원 관계만큼 이상적인 경우는 없습니다. 간혹 자기정체성을 포기하거나 상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관계가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일방이나 쌍방의 정체성 희생은 바람직한 이차원 관계가 아닙니다.
상호 보완적이고 알게모르게 발전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정신적 이차원 관계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다보면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해 가면서도 자기완성을 이루어갈 수 있을 텐데요. 완성된 개체가 완성된 전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삼차원 관계
직장동료등 사회적 관계가 삼차원 관계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관계가 이차원 까지 인데요. 가족과 십수년을 같이 지내고 사회적 계산이 덜 가미된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 집니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는 의식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서로간의 거리가 존재합니다.
이차원 관계에 익숙했던 사람이 사회에 나와 삼차원 관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됩니다. 사회적 거리를 기반으로 삼지 못하고 관성에 의해 이차원 관계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요. 사회생활을 할때는 적당한 완충거리를 설정하는 것이 무난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사차원 관계
자 이제 가장 중요한 사차원 관계로 왔습니다. 물리적 관계를 넘어선 나와 불특정다수와의 사이, 인류라는 전체를 다루어야 하는데요. 모든 관계로 부터 떨어져 나가 독립한 영차원의 완성된 개인과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전체를 아우르는 사차원의 만남은 인류평화의 당위성이 되어줍니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있는 사람의 얼굴은 모르지만 기아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의 중심에는 그들이 자신과 다르지 않은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 하나에서 시작해 전체가 하나의 우주로 끝나는 천부경은 사람과 사람이 다르지 않고 자연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 합니다.
인류는 사람사이, 관계차원을 발전시키며 사회를 이루어 왔습니다. 처음엔 씨족, 다음엔 부족, 그다음엔 국가로 성장하면서 일차원, 이차원, 삼차원으로 고도화 시켰는데요. 국가사회 단위에서 멈춘 차원관계가 국가간 갈등과 전쟁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인류전체를 생각하는 사차원 관계로의 진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천부경을 통해 사람(개인)과 인류(전체)를 하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커다란 테두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각 차원관계별로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을 하는 동시에 체화되는 지행합일이 불가능한 지라(이 단계에 이르신 분들도 있기는 하겠지요) 이러한 개념을 완성하기 위해 중간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다가가는 과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 이차원 관계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위력을 너무 가볍게 본 측면이 있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머리가 식혀보려고 해도 불가능할 테니까요. 사람이 고귀한 것은 그 이성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내면을 통해 절감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