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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닿으면/역사의 재구성

박달나무 패권시대

단군 호칭에서 박달나무가 가지는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목기시대 입니다. 우선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장 단단한 나무의 종류와 제대륙상의 지역분포를 살펴보고 이후 식물도감과 관련된 문헌 및 논문을 취합해서 신화가 아닌 목기문명 패권시대로서의 단군을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목기시대, 박달나무와 단군조선은 2006년도에 정치포탈인 서프라이즈에 올렸던 글입니다. 저 말고도 목기시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분의 블로그를 오늘 발견했습니다. 고리아이님의 글을 읽어 보시면 목기시대의 타당성을 입증해줄 유물발견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 주소는 http://blog.daum.net/coreai84/11673709입니다. 이 글에 따르면 '1911년 동부 잉글랜드 클락톤 유적에서 30만년 전의 나무창이 출토되었고, 독일 레링켄 유적에서도 창으로 사용된 연모가 출토되었다 (박정근 2002 <박정근의 고고학 박물관>, 다른세상, 24-32쪽)'고 합니다.

 

또, '잠비아와 탄자니아 국경 근처에서 뾰족하게 다듬어진 작대기와 나무곤봉 도구가 발견 되었다(이영호 2004 <역사, 철학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책세상, 96쪽.103쪽)'고 하네요. 하지만 이곳들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결부된 문헌이나 언어에 녹아있는 역사적 단어나 호칭등이 전혀 없다는 단점이 존재하죠.

 

목기시대를 규명할 때 유일하게 역사적 증거로 결부시킬 수 있는 것은 단군이 유일한 듯 합니다. 국가 통치자의 호칭으로 박달나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 단순한 음차로 치부하기에는 신화로 격하된 단군과 그 시대의 정신적 유산인 광명개천, 홍익인간, 재세이화가 너무나도 탈패권적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탈패권적 이라는 표현은 추종불허의 패권적 지위를 확보한 후 주변 국가들을 모두 포함해 사유가능한 범위의 중심에서 세상을 하나로 볼수있지 않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일극패권국 이라고는 하지만 단군시대의 패권은 그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순하게 예를 든다면 미국과 소말리아 정도의 현격한 국력 차이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미국도 이외의 국가가 전부 소말리아 수준이라고 한다면 싸우고 말것도 없이 다 품안의 세상이라고 여기고 좀 더 여유롭게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현격한 국력차이를 만들어 주었을까요? 단군조선이 BC 2333년에 개국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군조선 이전의 상고시대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 부분은 고토가 회복되어 당시의 역사를 우리민족이 고증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다음에 논해야 할듯 합니다.

 

다시 단군시대로 돌아가서 이 시기에 목기 즉, 박달나무를 패권무기에 사용했는지를 유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철기시대는 청동기+철기 병용시기인 초기철기시대, 철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후기철기시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초기철기시대는 BC 3 ~ BC 1세기까지인데 주조된 철제는 주로 농기구류 였고 무기는 여전히 청동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적이 한반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고 하는군요. 단군조선의 건국기를 대략 BC 2기로 설정한다면 얼추 초기철기시대의 중간시기에 속합니다.

 

단군조선의 건국시기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일부가 BC 2333년 이후로 추정하는 시기조차 초기철기시대의 끝자락에 걸립니다. 청동기나 철기가 독자적인 무기나 연장으로 사용되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손잡이나 몸체는 거의 나무로 만들어 졌습니다.

 

창이나 화살이나 끝부분을 동 또는 철로 만들어 붙일뿐 실제로 무기로서의 역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연결된 나무의 역할이 절대적이죠. 특히 창같은 경우 나무의 강도가 약하면 파괴력과 지속성이 떨어져 전쟁을 위한 무기로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단단한 나무라도 단번에 두동강 내버릴 수 있는 철제칼의 절단력이 등장하지 않았던 초기 철기시대의 청동검은 박달나무 처럼 단단한 나무로 만든 창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서너배 이상에 달하는 길이의 열세로 박달나무 창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창의 위력은 총과 대포가 등장한 중세 이후에 가서야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단군에 사용된 박달나무 단자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요. 임금의 호칭에 박달나무를 사용할 만큼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반증이 됩니다.

 

박달나무의 서식지는 높은산에 있습니다. 단군이 신단수 아래에 고조선을 열었다고 하는데 그 신단수가 박달나무라고 하는 군요. 이것을 달리 해석하면 박달나무를 기반으로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이야기도 될수 있습니다. 당시의 박달나무는 패권무기에 해당하는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을 겁니다.

 

천제의 아들 환웅의 후손이라는 신화의 부분은 높은곳, 그래서 하늘이라고 상징할 수 있는 산을 거점으로 세력을 확장한 것을 말합니다. 박달나무는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 우수리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수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가는 러시아와 중국의 경계에 위치한 강유역인 것 같습니다.

 

한반도, 중국북동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는 단군조선의 영토영역과 일치합니다. 단군조선과 박달나무는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박달나무가 서식하고 있는 지역이 단군조선의 영역이었고 단군조선은 박달나무 서식지를 전략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고 분석됩니다.

 

박달나무는 홍두깨, 방아와 절구공이 및 수레바퀴나 바퀴살을 만들정도로 단단함을 자랑합니다. 동북아 지역에서 이에 견줄만한 나무가 없을겁니다. 북유럽의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마호가니 나무가 있지만 기원전 시기의 문명국가를 세울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추지 못한 지역이라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순하게 끝부분을 뾰족하게 깎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창이 되는 박달나무입니다. 그 단단함 때문에 여러번을 사용해도 쉽게 끝이 무디어 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나무가 동북아의 온대기후 조건에서 서식하고 있다가 우리민족을 만나 단군시대의 패권무기가 되어준 것입니다.

 

박달나무의 단단함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큽니다. 무기가 가져야 할 강도, 내구성, 신속한 대량생산성, 생산에 소요되는 인적.물적 비용 최소성등 모든것을 갖추고 있는 완벽한 존재였습니다. 또한 서식지가 높은산에 국한되어 있어 이곳만 장악하면 배타적 확산제어력을 확보할 수 있는 천혜의 무기죠.

 

단군조선 시대의 무기공장은 다름아닌 높은산 꼭대기에 있는 박달나무 서식지였던 것입니다. 그 계보를 이어 동북아 지역을 장악했던 고구려가 천년에 가까운 생명력을 보여준 것 또한 이 박달나무의 숨은 도움이 아니었을까요?

 

단군조선시대의 중심에 서있던 무기체계로 명명을 할 경우 박달나무 패권시대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핵무기가 정점에 있는 현대를 핵무기 패권시대로 분류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단군이 그저 신화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많은 역사적 연결고리를 상식선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일까요?

 

역사적 유물에 기반한 현대의 역사관은 이제 목기시대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빠진 이빨을 꿰어 맞추어야 합니다. 목기패권 시대를 구가했던 단군조선을 역사의 뒷전으로 방치하는 한 역사라는 학문은 그저 널부러진 유물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은 부분표절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가시게 토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