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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인식일반화의 속성

사람의 인식과정은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정치란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식과정의 특성을 명확하게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의식이 형성되는 시기에 학교교육이 시작됩니다. 교육과정, 사회생활을 통해 들어온 정보들이 거대한 산이되어 쌓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바위처럼 굳어 가죠.

 

정보는 주변정보와 연결됩니다. 연결된 주변정보가 많을수록 결속력이 강해져 고정관념이 됩니다. 고정관념은 물리적 결합수준의 강도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깨려면 핵분열을 일으킬 정도의 객관자(중성자)를 충돌시켜야 합니다. 의식분열인 셈입니다. 의식세계와 물리세계가 비슷하게 작동합니다.

 

의식은 뇌신경 세포의 작용입니다. 세포는 물리적 결합물이고 작동원리는 원자와 비슷합니다. 고정관념은 정보 연결량이 많아 압력이 커지면 형성됩니다.

 

원자중 가장 큰축에 속하는 것이 우라늄입니다. 의식중 가장 큰 것이 고정관념이죠. 원자계의 우라늄, 의식계의 고정관념은 폭발 임계점을 가집니다.

 

원자를 깰때 중성자를 사용합니다. 잔자, 양성자와 다른 중간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을 깰때도 중간성질을 이용합니다. 그것을 객관자라 합시다.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을때 구하는 것이 객관자 입니다. 기존의식을 깨야 그속에 갇혀있던 본질을 얻을수 있습니다. 화두에서 꺼내는 것이 객관자 입니다.

 

이런저런 정보와의 연결을 분리하고, 부수고, 해체해서 객관성을 가지는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꺼내면 이것이 객관자 입니다. 이 과정이 가장 어렵습니다.

 

한번 객관자를 꺼내게 되면 다른 화두도 쉽게 깨어낼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객관자로 모든 대상을 꿰뚫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로 안되면 여러개의 객관자를 가지고 일관완성을 시도하면 됩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경우에 속합니다. 의식이라는 게 쉽게 깨워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나 극한상황, 이를테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경우 찰나의 순간에 의식이 트이기도 합니다. 폭력적인 상황이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활용한 것이 대중 선전선동입니다. 감정, 이익을 자극해 특정한 방향으로 의식을 몰아넣는 방법입니다.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몰이를 우호적으로 착각하죠.

 

대중을 의식화로 몰아넣기 위해서 국가권력이 방송매체를 장악하고 장시간에 걸쳐 다양한 각도의 정보를 퍼붇습니다. 체제의식화가 가장 파괴적입니다.

 

그런데 진보좌파는 극소수가 모여 의식화를 시도합니다. 몇명은 되지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엔 너무 약합니다. 개인매체인 정보통신 도구는 별효과가 없죠.

 

많아봐야 고작 수십만 입니다. 최소 백만, 일반적으로 천만단위의 작업이 아니면 대중 인식일반화는 달성할수 없습니다. 진보좌파가 헛꿈꾼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집권 10년동안 대중 인식일반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정권차원의 결과도 이러한데 일반 집단이 대중 인식일반화를 이루기는 불가능 하죠.

 

김대중, 노무현은 대통령 자리만 차지했을 뿐 방송매체를 장악해서 대중 인식일반화를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문화권력은 선거민주주의로 쟁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력신문, 종편, 학계등 보수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과, 사적 영리기업이라는 것 때문에 문화권력에 대한 폭력진압이 불가능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대중 인식일반화 도구인 매체가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이전 60~70년대 까지는 시공간 제약이 뚜렷했었습니다.

 

입으로 전파되는 소문의 속도와 규모를 대중매체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것이 라디오, 바보상자가 전국민에게 보급되면서 급변합니다.

 

뒤이어 나온 인터넷, 스마트폰은 정권이 활용할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정보수집 서버, 분류저장장치만 두면 그만입니다.

 

진보좌파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정부가 대중매체를 움직이면 그냥 무력화 됩니다. 사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사실로 대중 의식에 일반화 시킬수 있습니다.

 

정부에 반하는 선전선동은 아주 간단하게 제압할수 있습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개혁, 혁명을 이야기 하는 것은 비현실 적입니다. 하나마나한 것이죠.

 

군사독재 시절엔 대통령 욕만해도 잡아갔습니다. 독재정권이 발없는 말의 속도를 제압할 시공간 초월적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입단속에 노력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은 많고 공안인력은 적고, 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폭력강도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정보통신 수단을 확보하면서 밑바닥을 훑던 정권폭력이 확 줄었습니다.

 

정보통신이 민주화를 발전시켰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인적물적 비용이 큰 물리적 통제에서 365일 24시 실시간 감시가 가능한 비접촉 수단으로 진화한 겁니다.

 

통치수단의 변화발전을 파악하지 못하고 구시대적 혁명, 개혁 행동습성을 답습하면서 무엇을 이룰수 있다 주장한다면 이건 심각한 일입니다.

 

잘못된 지휘관은 부대를 몰살시킵니다. 혁명가, 개혁가는 지휘관이죠. 구시대적 행동강령으로 선전선동 하는 것은 혁명역량, 개혁역량을 몰살시키는 짓입니다.

 

남한의 혁명가, 개혁가는 보수를 주적이라 맹비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주적은 자기자신들 입니다. 제진영을 몰살시킬 짓을 하면서도 알지 못합니다.

 

의식이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시공간 제약을 벗어나 21세기로 발전했는데 자칭 혁명가, 개혁가는 19세기식 주먹구구로 짱돌만 굴리는 겪입니다.

 

지피지기라 했습니다. 인간의식, 과학기술, 사회수준등 기본이라할 현실인식 부터 제대로 한후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선무당이 사람잡는 역사역적은 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