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해부
권력 = {(공권력 + 비공식 권력) + 협력세력} + 하이에나
권력의 종류
권력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국가에나 공인되지 않았지만 국가나 정부에 버금가는 비공식적인 권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가와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기업들이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조직폭력 집단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거의 공인된 위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등 선진국이라고 평가받는 나라에서 조차 비공식 권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공권력 + 비공식 권력"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데요.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나라나 왕정제를 유지하고 있는나라, 독재국가를 막론하고 권력은 이 두가지 형태로 분화되어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권력이라고 평가해 줄수있는 규모, 일정한 위상을 차지해 건드리기 힘든 위상을 확보한 비공식 권력들이 공권력에 비해 탈법적인 행위를 더 많이 하지만 그 크기에 합당한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분란이 만들어질 상황을 되도록 피하게 되죠.
얼마전 언론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모 재벌기업 총수의 어깨동원 폭력사건이 대표적인 비공식 권력 형태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보복을 위한 소소한 남용은 비공식 권력이라고 평가하기 좀 그렇죠. 정권을 만들어 가는 정도의 움직임등 보다 커다란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비공식 권력행위라 칭할 수 있을겁니다.
협력세력
두가지 형태의 권력 근처엔 항상 실제 손발이 되어 움직여 주는 협력세력이 존재합니다. 오늘자 신문 기사를 보니 용산철거민 시위대 해산에 용역업체 직원이 가담했는데 이것이 사실이면 불법행위에 해당된다고 하더군요.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손발역할을 해주는 용역업체가 협력세력인 겁니다.
탈법적 위험부담 때문에 공권력이 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일들에 용역업체등의 협력세력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은행등이 채권추심을 위탁해 법이 정한 수위를 넘어 채무자를 압박할 수 있는 대행업체와 이익을 나누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살펴보면 참 다양하고 많은 것이 이러한 협력세력 입니다.
비공식 권력들도 거의 공인화 되어있는 자기 조직이 직접 나서기 껄끄러운 일들에 협력세력을 동원합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될경우 책임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해결을 해야만 조직이익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해결사가 그러한 역할을 하는데요. 구체적인 언급은 생략합니다.
비록 주변세력이기는 하나 이들도 공인화된 공권력, 비공식 권력의 이익을 대변해 연명하기 때문에 되도록 불필요한 분란거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소소한 일들에도 간섭을 하며 이런저런 문제들을 대거 만들어내는 협력세력을 가까이 하다가는 의뢰하는 쪽이 화를 당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중하지 못하면 일이 끊겨버립니다.
이렇게 두가지 형태의 권력과 그 협력세력들은 되도록 자잘한 움직임을 피하며 아무데나 기웃거리지 않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이들과 이해관계를 만든 기업이나 세력, 개인에게 책임을 묻거나 해결을 종용할 뿐이지요. 여기까지가 우리의 눈에 보이고 흔히 접할수 있는 권력의 모습입니다.
하이에나
국가사회에서 가장 낮은 단계, 먹이사슬의 최 하위단계가 바로 여기입니다. 개인이나 기업, 단체중 법이나 도덕적 하자가 발생한 대상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협박, 공격을 해서 뜯어먹고사는 세력이 인간 하이에나들이죠.
위에 언급했던 협력세력 중 자잘한 문제에 집착해 권력으로 부터 나오는 일거리가 막혀 도태되어 이 단계로 내려오는 경우도 많을겁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기업형태를 가지지는 못하고 서너명 정도의 패거리를 이루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것을 감추어 공권력의 처벌을 피해 쉬쉬하고 있을때 이것을 빌미로 폭로협박을 통해 금품을 갈취하거나 심지어는 완전몰락으로 끌고가는 것이 인간 하이에나들의 청소부 역할이죠. 또한 도덕적인 잘못을 감추려다 하이에나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의 공략수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우선 약점을 잡고 그것으로 협박을 하는데요. 협박받는 쪽에서 공권력에 기대어 버리면 바로 꼬리를 내려버립니다. 하지만 대부분 감추고 싶은 걱정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다가 사람들을 풀어 죽여버리니 어쩌니 하는 위협에 무릎을 꿇어버리며 몰락으로 가게되죠.
이러한 인간 하이에나들은 법과 도덕이라는 보호망을 뚫고 나갔을 때나 만날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들에 대한 인식도 전무하고 이들을 만났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해 먹이감만 찾아내면 땅짚고 헤엄치는 한탕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명암
세상은 이렇게 양지와 음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태양의 밝은 빛이 비추어지는 곳 반대쪽은 항상 어둠이 깃들듯 사회도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밝으면은 우리가 늘 접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이 없지만 어두운 부분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우선 법과 도덕의 보호망을 뚫고 나갔다가 직접 체험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러한 음지를 다스리는 공권력인 경찰, 검찰, 법관등이 있겠지요. 또한, 사회의 꼭대기인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다 보면 다 보입니다. 이들의 협력업체 종사자들도 대부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권력층에 입성한 사람들이 거기서 탈락하는 것을 죽음보다 두려워 합니다. 권력이 동원하는 힘이 얼마나 법을 무시할 수 있는지를 직접 힘을 행사하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뢰를 받아 직접 팔다리가 되어준 협력업체 종사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겠지요.
왜 법을 지키고 기본적인 도덕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공자님들의 말씀은 늘 판박이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고 지켜야 할 양심이다. 요새는 이러한 소리를 접하면 한숨이 나옵니다.
가만히 앉아서 공자왈 부처왈 하시는 분들이 세상을 얼마나 안다고 저리 책상물림 소리나 하고 계실까하는...
자신의 발걸음이 혹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여 극도로 조심하는 스님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공자왈 부처왈로 세상을 살라고 떠들다 법과 도덕의 실체적 필요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발생하는 수많은 희생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지적 허영이나 밥그릇을 위해 혀만 놀리고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국가해체의 의미
경제난이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각에서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거론하는 학자, 지식인들도 있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경기침체일 것이다라는 소리를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침체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는 전망치 갱신이 날을 다투는 형국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죠.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이제는 올해 수출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큰일날 것이라는 소리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경제위험 수위를 높여서 전망하고 있는 흐름으로 볼때 올해안에 경제가 절딴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요.
아일랜드에 이어 영국도 국가부도 위기로 몰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몰락의 대열에 대한민국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장담을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 듣고 싶은데 자신감있게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국제화 되어버린 한국경제의 특성상 세계경제의 위기는 헤어나기 힘든 위기라고 봐야 겠지요.
국가경제가 부도나면 공권력이 마비되고 그렇게 되면 법이라는 보호망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때가 되면 대한민국 국민들 절대다수가 하이에나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공권력이 법의 보호망을 작동시켜 스스로 해체해 버리고 기어나오는 사람들만 건드리고 있지만 그때가 되면 물불안가리겠지요.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협력업체들도 공권력의 눈치를 봐야 나오는 일거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하이에나의 세계로 전업하지 않을수 없게될 겁니다. 그래서 국가해체 위기를 무덤담하게 바라보거나 거쳐갈만한 통과의례로 생각하는 막연한 생각은 위험한 것입니다.
세상공부(음지를 모르면 세상을 보았다 할 수 없다)
환경이 세상을 알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나 그속에서 몸소 체험하면서 세상의 어두운 면을 잘 알게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지 않고 음지를 가까이 하게되는 경찰, 검찰, 법관등의 직업이 가르쳐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또한 직업을 통해서 어릴때 어렴풋이 넘겨짐작 했었던 음지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유통업체의 매출관리를 했었는데 수십명에 달하는 그곳 영업사원들의 경력이 화려하더군요. 별 한두개는 기본이고 사기, 폭력, 강간, 사칭등 다양한 전력을 통해 다져진 노회한 머리를 상대해야 했었습니다.
전임자는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맞고함도 치고 욕설도 주고 받더군요. 하지만 범죄자라는 선입감을 가지지 않았던 저는 그들이 대하는 만큼 응대했습니다. 가짜매출을 제시하면 해당 계약서를 무효화 시키는 선에서 마무리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저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전과경력이 화려한 그들로서는 원칙대로 대하는 제게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제 멱살을 한번만 잡아도 경찰에 신고해 버리면 자신들의 전과경력 때문에 곧바로 폭력행위로 처벌을 받게되는 상대적 약자였던 것입니다. 법을 훼손하지 않는자는 훼손한 자에 대해 우월한 존재가 되는 셈이죠.
이처럼 별거아닌 것 같은 법과 도덕도 훼손해 버려 없어지면 물과 공기처럼 사회생명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것을 절절하게 깨닫게 해주는 경험이나 가르침이 없으면 법과 도덕을 가볍게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사회가 수준이상의 이성적 작동체계라는 전제로 행하는 공자왈 부처왈이 위험한 것입니다.
언행의 무게
수천년 동안 공자왈 부처왈 해왔지만 그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마음수행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권력화의 기반이 되어 부작용을 양산해 해악을 끼치기도 했는데요. 오늘날 종교인, 지식인들이 떠드는 것을 들어보면 각자에 맞는 근원적인 해법이 아닌 일반적이기 때문에 현실화 하기 힘든 말들만 나열되어 있더군요.
어떤 스님말씀이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곧 자기 완성이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다. 그러니 열심히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더군요. 참 편하게 종교장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말을 내뱉어야 쉽게 종교연 할 수 있기 때문인듯 합니다.
위와 똑같은 말씀이 수천년 이어져 왔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해서 완성되는 사회는 아직 없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가르침을 받기위해 성현의 말씀을 끼고살고 평생을 절에 다니며 시주를 하고 교회를 나간 분들과 가정이 그렇게 완성되었다는 사례가 거의 없는것이 현실이죠.
왜그런가? 종교란 고민거리를 가지고 온 모든 사람에게 오늘당장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경우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수천가구의 고민을 해결해 버리면 그 방법이 공유되어 사회공공의 해법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종교의 역할, 그 권위와 권력이 절딴나 버리겠지요.
마찬가지로 무언가 심오한 것 같은데 당장 적용되지 않는 머나먼 말씀은 권위와 권력을 만드는데 작용할 뿐입니다. 진짜 말씀은 밥과 빵을 만들고 그것을 나누며 다툼이 가져다 주는 공통의 손해를 인식하게 만드는 정도면 족합니다. 이이상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간결한 말씀은 내뱉는 순간 피와 살이되어 사라져 버립니다.
만약 오늘의 경제위기를 알게된 가족 일원이 부모형제들의 부동산, 주식, 펀드투자를 적극적으로 가로막기 위해 가족간의 존중이 훼손되는 경우를 불사했다고 칩시다. 이러한 경우에 위의 스님은 어떤 말씀을 하셔야 할까요? 수천수만가지의 가정사를 부처왈로 때우는 건 너무 무책임한 언행이죠. 때론 살인교사, 살생이 될수도...